| ||||
석주 스님이 입적하자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아산 보문사에서 입적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장례위원회도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늦게 교통사고로 입적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한 언론은 "원로스님의 입적을 '포장'해서 신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석주 스님이 보문사에서 입적하신 것으로 알았으며, 공식 보도자료가 나간 뒤에 교통사고로 입적하신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이같은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의도적인 포장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국불교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큰스님’으로 존경받아온 석주 스님의 열반 발표에 대한 ‘포장’ 여부를 두고 이렇게 뒷말이 많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근세의 고승인 한암 스님과 만암 스님이 좌탈에 들었고, 지난해 입적한 서옹 스님의 좌탈 역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오랜 좌선수행을 한 스님들은 그 모습 그대로 죽음에 들며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난해 입적한 청화 스님이나 1980년대에 입적한 운허 스님과 취봉 스님은 입적을 예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사들의 죽음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수행자에게 있어서의 죽음은 해탈을 의미한다. 탐진치 삼독을 소멸하고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의 죽음에는 삶의 무상함을 일깨워주면서 한시도 게으르지 말고 정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석주 스님이 교통사고로 입적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자들이 은사 스님의 수행력에 흠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보통 원로 스님이 입적하면 임종게가 발표되고, 다비식 후에는 사리가 수습된다. 문도들은 이를 통해 은사 스님을 빛내려 하고, 세인들은 여기에 매달린다. 그러다 보니 이따금씩 신비화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선사들의 열반이 형식주의에 흐르고 있음을 경계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암 스님의 마지막 가르침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서암 스님은 입적하기 직전 “누가 묻거든 그 노장 그렇게 살다 갔다고 하라”며 임종게마저도 거부했다.
굳이 치장하지 않아도 진정한 수행자의 삶 자체는 중생의 사표가 된다. 욕망과 고통, 번뇌를 끊고 영원한 적멸에 드는 열반은 우리 모두의 목표이며, 그래서 큰스님들의 삶과 죽음은 어떻게 살고 가야할지를 보여주는 귀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