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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의 제자인 벨 훅스(Bell Hooks는 필명, 본명은 Gloria Watkins)는 인종, 성차별, 계급, 문화의 정치학에 관해 20여 권의 비평서를 집필한 인기작가이다. 미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더욱 유명한 급진적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이자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문화비평가이자 교육가, 영문학자로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는 한편 어린이를 위한 책도 두어 권 썼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은 팔방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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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 여성주의 운동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 ‘힘든 삶’입니다.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고된 삶’입니다. 새롭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아는 ‘어려운 삶’입니다. 머리 속의 운동이 너무 편한 것만 쫓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Feminism is for everybody)>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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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스는 70년대초, 당시 캠퍼스를 뒤흔든 페미니스트 운동의 영향으로 작가 다이안 미들러브룩(Diane Middlerbrook)의 여성학 수업을 들으며 의식화 그룹의 유일한 흑인 여성으로 참여한다. 페미니즘과의 조우는 백인 여성뿐만이 아니라 훅스와 같은 젊은 흑인 여성들에게도 인종 및 성별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백인 우월주의적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는 그녀로 하여금 노예해방운동가 소저너 투루스의 피맺힌 절규를 제목으로 붙인 첫 번째 저작,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Ain’t I a Woman: Black Women and Feminism)>를 쓰도록 이끌었다.
19 세에 쓰기 시작한 이 책은 8년간의 연구조사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1992년 <퍼블리셔스 위클리>지에서 선정한 ‘지난 20년간 여성이 쓴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1975년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과 그의 제자인 찬콩(Chan Khong) 스님을 만난 벨 훅스(Bell Hooks)는 여성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에는 나와 남을 동시에 사랑하는 자비심이 전제돼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와 관련 훅스는 불교 잡지 <샴발라 선>에서 틱낫한 스님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자비심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미국 정부가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잃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회정의를 위한 시민운동은 매우 놀라운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훅스가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을 저술한 기본 의도 역시 소외된 여성에 대한 자비였다. 공동체적 사랑을 전제로 한 그녀의 저술 작업과 일관된 문제의식은 바로 흑인여성의 사회적 지위에서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영향을 밝혀내고 그 고리를 끊는 것이었다. 그녀는 흑인 여성의 경험과 사회와의 관계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정치학과 페미니스트 관점에서의 성차별주의를 모두 탐구할 필요가 있었다. 노예제 기간의 흑인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요소, 흑인 남성의 성차별주의, 최근의 페미니즘 내부의 인종차별주의까지 그녀의 탐구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훅스에게 미국은 계급에 기반을 둔 백인 우월주의적 가부장제 자본주의이다. 외조부모(그의 필명 벨 훅스는 외할머니 이름이다. 훅스는 자신의 이름을 소문자로 쓰기를 고집한다) 가계의 ‘탈법적인 문화’에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들은 중간계급 사회의 도덕적 관습 밖에 있는 전근대적인 남부의 흑인 농민들로 쉬지 않고 일했으나 항상 가난했다. 가난은 계급의 문제였으나 그것은 ‘돈’, ‘돈이 없다’는 상투적인 말로 은폐되었다. 훅스가 계급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게 된 것은 고향을 떠나 장학생으로서 스탠포드로 옮겨온 후였다. ‘낯선 이방인’으로서 그녀는 혜택받은 ‘타자’인 특권층 학생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훅스는 지배계급에게 그들의 규범이 있듯이, 그들이 노동계급의 처지를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가난한 이들과의 결속을 자신의 삶의 중요한 명제로 받아들인다.
훅스가 계급적 관점에서 성(性)과 인종의 문제를 바라본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녀는 여성운동에 참여했던 초기부터 백인 여성들이 인종과 성을 분리된 문제로 보는 주장에 혼란스러웠다. 흑인과 여성이란 삶의 경험에서 두 문제는 분리될 수 없으며, 흑인이자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인식했다.
훅스는 백인 중심의 영문학계에서 토니 모리슨 등 흑인 여성작가를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페미니즘이 ‘성차별, 성적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기 위한 운동’임을 알리고, 해방을 위한 열정의 정치학을 실현하기 위해 ‘백인 우월주의적 자본주의 가부장제’라고 이름 붙인 사회체제의 보수회귀 움직임과 반페미니즘 역공’에 맞서자고 언제나 열정적으로 호소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급진적 여성운동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훅스이지만 가슴 속에는 언제나 틱낫한 스님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메아리치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고백이다. “자아와 무아(無我)를 둘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당신 자신을 위한 일은 무엇이든 곧바로 사회를 위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를 위한 모든 일 역시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이런 통찰력은 무아를 실천함으로써 강력한 힘을 얻습니다.”(‘샴발라 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