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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승가, 국회
<행복을 전하는 부처님 가르침>

동국역경원 이미령 역경위원
오늘 저녁 뉴스를 보니 이제 겨우 국회가 정상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국회의원들이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얼마나 국가 일에 정성을 다하여 임할지 무척 의심스럽습니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간에 저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의사당에 들어갔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긴 정당의 목표는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야당이 여당 되면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것이요, 여당이 야당 되면 곱게 승복할 수 없는 거야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들게 정권을 잡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나, 정권을 놓친 것에만 미련을 두고 있는 모습은 정말로 보고 있기 힘들고 민망해질 정도입니다.

국회도 승가입니다. 승가(僧伽)란 부처님의 법을 믿고 따르며 수행을 하려는 목적으로 모인 자들을 가리키지만 이 말은 본래 ‘무리, 모임, 집단’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목적을 함께 하여 모인 사람들의 무리를 ‘상가(승가)’라고 불렀으며, 이 말을 부처님도 빌려와서 교단을 승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승가는 종종 바다에 비유됩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면 강물의 본래 이름은 없어지고 그저 바다라고 불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크샤트리아, 바라문, 장자, 거사 등의 구별이 있으나, 출가하여 법복을 입으면 세속의 성은 없어지고 오직 석가의 제자라고 불려질 뿐이다. 출가한 대중은 마치 바다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은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석가의 제자, 사문이라고 해야 한다. 그들은 모두 나로 말미암아 생겼고 법을 따라 이루기 때문이다.” <증일아함경> 제21권

깨달음을 얻고자 부처님에게 모여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그 화려하고 다양한 신분계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랑스럽기 그지없던 자기 계급과 집안의 성을 버리고 석(釋)씨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예전의 기득권은 물론이요 피해의식 따위도 모두 내버리라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 얽매이다 보면 최고의 목적인 깨달음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요, 그 모임(승가)은 자칫 분열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성원은 일단 승가에 들어오면 하나의 목적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개성을 버릴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다른 이들과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화합승’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런 공동체가 오래도록 가장 훌륭한 가치를 위해 존속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어느 동네, 어느 동창회, 어느 문중, 어느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이겠지만 일단 배지를 달고 의사당에 자리를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되는 것입니다.

신분계급까지도 철저히 지워버리는 승가라고 해서 어찌 갈등이나 다툼이 없었겠습니까? 부처님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다툼 해결법을 계율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중 다툼을 가라앉히는 일곱 가지 법은 깊이 생각해볼 만합니다.

부처님께서 발지국의 사마촌에 계실 때 어느 날 대중 가운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것을 다스리는 일곱 가지 방법을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다툼이 일어날 때에는 이렇게 다스려라. 먼저 본인이 있는 앞에서 다스리고,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다스리고, 불완전한 정신이었을 때는 건강을 회복한 뒤에 정상으로 인정해주고, 본인의 자백에 의해 다스리고, 다수결에 의해 다스리고, 싸움을 끝내려면 풀로 땅을 덮듯 불문에 부쳐야 한다.” <중아함 주나경>
틱낫한 스님의 설명을 빌리면 이 경전의 말씀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갈등이 일어날 때면 첫째,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라. 둘째, 당사자들은 갈등을 생기게 만든 모든 세부적인 일들을 기억하여라. 셋째, 고집을 버리고 화해하도록 최선을 다하라. 넷째, 짚으로 진흙을 가리듯 덕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당사자들의 입장을 최대한 대변해주도록 하라. 다섯째, 남들이 말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고백하라. 여섯째, 모든 대중들의 합의를 통해 일을 결정하라. 일곱째,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여라.”

승가는 이런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해 왔습니다. 나라가 소중하면 국회라는 승가는 이런 부처님의 지혜를 빌려서라도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경기침체로 자꾸 그늘져 가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최소한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까지는 주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
2004-12-15 오후 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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