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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스 캐롤라이너에 위치한 채플힐선원(Chapel Hill Zen Center)의 패트리샤 펠런(Patricia Phelan) 선원장은 ‘좌선할 때는 앉기만 하고 일할 때는 일만하라’는 전통적인 일상선(日常禪)을 표방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백장 선사의 가풍을 현대에 드날리고 있는 펠런 법사의 가르침은 생활인, 특히 도시민들의 모든 행위에 적용될 수 있는 수행법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일상 속에서 평상심(平常心)을 갖고 매사에 대처해 나갈 경우 생활인들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건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참선하기 위해 산속에 위치한 선원을 찾을 필요가 없으며, 수행 역시 명상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펠런 법사는 이러한 일상선과 함께 ‘우리는 이미 부처이기에 어떤 여건에서도 부처행을 하고 있다’는 ‘본래부처’를 강조한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는 단지 수행을 통해 참된 본성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강조한다.
“불교는 우리가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든 이미 부처라고 가르칩니다. ‘깨닫다(Realize)’라는 말은 ‘실현하다(to make real)’란 의미입니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은 발생한 어떤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마음 또는 지각에 관한 어떤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골수, 뼈, 머리카락까지 관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좌선을 할 때 어떤 생각을 멈추려 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신념이나 옳다고 여기는 견해를 내려놓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좌선을 통한 결과가 우리의 살과 뼈로 스며들 수 있을 것입니다.”
펠런이 좌선을 시작한 것은 1969년 오리곤에서 였다. 71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사간 그녀는 타사자라선원에서 몇 년간 머물며 정진했다. 91년 10월 채플힐선원의 선원장에 임명될 때까지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선원에서 20여년간 수행하며 지도법사와 기숙사 사감을 맡았다. 펠런은 77년 순류 스즈끼(Shunryu Suzuki) 선사의 후계자인 리처드 베이커 선사(샌프란시스코선원장 역임)로부터 계를 받았다. 그후 그녀는 스즈끼 선사의 또 다른 제자인 소준 멜 와이츠먼과 렙 앤더슨과 함께 수행했다. 그리고 하와이에 있는 금강사원의 로버트 아이큰 노사와 함께 정진하기도 했다. 95년 마침내 그녀는 버클리선원장인 소준 와이츠먼으로부터 전법(傳法)을 받았다. 자신만의 내적 여행과 더불어 오랜 불교 공부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그녀의 설법은 전적으로 스즈끼 선사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 조동종의 스님인 스즈끼 선사는 1959년 세수 55세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퇴폐문화가 범람하던 곳에 좌선을 행하는 정통 선불교를 전했다. 13세기 도겐 스님의 직계후손이었던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다수의 선원을 설립하였고 60~70년대에 미국에 불교를 전한 선구적인 인물에 속한다. 조용하고 소박한 성품에 작은 체구를 지닌 스즈끼 선사는 LSD 같은 마약을 통한 심령 실험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반문화의 중심 도시에 도심 선원을 차리고는 참된 정신의 변화와 마음의 광대함을 체험하고 싶다면 마약 대신 좌선을 해보라고 미국인들에게 권유했다.
가능성 풍부한 일반인 참선 지도
조동종의 근본 가르침 또는 묵조선을 닦는 기본 관점은 우리가 모두 부처라는 것, 우리가 이미 부처라는 것이다. 미국 채플힐 선원장 패트리샤 펠런(Patricia Phelan) 법사의 스승인 스즈끼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되는 것은 부처가 되는 것이다. 불성(佛性)이란 인간성 즉 본성(本性)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펠런 법사는 스승의 가르침 그대로 좌선과 더불어 일상생활 속의 올바른 노력을 통한 수행을 강조한다. 그녀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온 마음과 육체, 완전한 주의집중 등을 통해 전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이렇게 수행할 경우 우리 자신과 우리의 행위는 전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의 집중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체험들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삶을 변화시킬 필요성에 의해 수행하려는 동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부처님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부처이며, 수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참 성품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습관은 구름에 시야가 가린 것처럼 무명(無明)에 빠져있을 뿐 본심을 회복하면 되는 것이다.”(www.intrex.net/chzg)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는 조동종의 선법을 충실히 계승한 펠런 법사는 “초심자의 마음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구참자의 마음에는 별 가능성이 없다”는 스즈끼 선사의 가르침 그대로 일반인을 위한 참선 프로그램을 계속해 오고 있다.
1959년 55세의 나이에 미국 샌피란시스코에 도심 선원을 연 순류 스즈끼(Shunryu Suzuki) 선사는 불교나 참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발심자들이 오히려 텅 비운 마음으로 공부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몇 안 되는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 아파트 거실에서 좌선을 하며 시작된 선방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다. 샌프란시스코 선원, 산타 로사시에 있는 소노마산 선원, 아시아 외부 지역에 처음으로 설립된 전문 승원인 타사하라, 유기농을 하며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추구하는 그린걸치, 버클리 선원, 카논도 선방, 초심사(初心寺)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미국이라는 낯선 문화권에 들어와 황무지에서 불교를 일구었던 스즈끼 선사는 처음에는 ‘돌에 나무를 심어 뿌리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막막한 심정을 자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법문을 청한다면 몇 시간이고 고심하며 철저히 준비했다. 만성 천식에 시달린 그였기에 ‘건강을 유지하려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무리 권해도 스님은 들은 척도 않고 별 진전도 없어 보이는 포교를 계속한 것이다.
이러한 스즈끼 선사의 선각자적인 전법의 노력은 오래지 않아 열매를 맺는다. 1966년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5년째 된 리처드 베이커(Richard Baker)는 가장 눈밝은 수행자였다. 그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이 스즈끼 선사에게 참선을 배워 삶에 적지 않은 영향도 받았고, 법사가 될 가망성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제자가 베이커였다.
이 해 스즈끼 선사는 베이커 법사에게 대외적으로 자신의 제자라고 말해도 좋다는 허락을 한다. 이후 베이커 법사는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제2인자가 되어 행정과 수행의 큰 틀을 짜게 된다. 펠런 법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준 두 스승이 스즈끼 선사와 베이커 법사였던 것이다.
스즈끼 선사가 1971년 세수 67세로 입적한 뒤 후계자인 베이커 법사가 샌프란시스코 선원장을 이어받자 펠런 법사는 베이커 원장의 지도를 받으며 선원을 함께 이끌다가 91년부터 채플힐 선원을 맡아 묵조선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