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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라고는 맡아 볼 수 없는 회색도시에 때 아닌 사과 향기가 진동한다. 절망과 좌절, 시련과 역경을 자양분 삼아 아름답게 익은 사과들이 <내 인생의 사과나무>라는 한 광주리의 책에 담겨 나왔다. 병충해가 극심한 마천루의 골짜기에서 소음과 분진을 먹고 자란 사과들이기에 그 향기가 더 달콤하다.
“사랑의 사과나무, 나눔의 사과나무, 도전의 사과나무, 희망의 사과나무, 모양은 제각각 달랐지만, 소금밭이거나 자갈밭이거나 콜타르를 덕지덕지 칠한 아스팔트에서 자라난 사과나무”였기에 그 열매는 더욱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사과 꽃처럼 감미로운 감동을 전하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9시45분에 방송되는 MBC 텔레비전의 <사과나무>를 진행하는 김성주 아나운서가 <사과나무>에 출연했던 17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묶은 <내 인생의 사과나무>는 휴머니즘의 승리를 엮은 각색 없는 원문이다. 김성주 아나운서는 그 자신이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6전7기의 꿈을 이룬 도전의 사나이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악착같은 생의 근성보다는 봄에서 가을까지 사과가 익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땀 냄새가 묻어 나온다. 그는 “자신만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자라나기를 바란다”면서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필자 자신의 이야기인 ‘나의 사과나무, 어머니’로부터 <사과나무> 첫 출연자로 말기암 환자인 서옥경씨 이야기, 그리고, 고통 받는 전 세계 어린이의 어머니 김혜자, 정치인 노회찬, 산악인 염홍길, 목숨같은 시를 쓰는 돌시인 박진식씨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들은 힘들고 지칠 때 마다 기대고 의지해온 ‘내 인생의 사과나무’를 소개하며 희망과 도전의 정신을 북돋워 주고 있다.
“김훈씨의 사과나무는 ‘밥’이다. 그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고, 그 힘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글을 쓴다. 그렇게 나온 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밥이 되어주었을까.” <칼의 노래>의 소설가로 ‘밥벌이가 지겨운 사내’라고 자신을 일컫는 김훈을 소개한 글이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즐겁게 읽히고, 오래 그 여운을 음미하게 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사과나무를 찾다가 보니, 어느새 그 자신이 사과나무가 된 김성주 아나운서의 맑고 때 묻지 않은 ‘사과 향기’가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말기암 환자로 남편에게 미역국 한 그릇을 끓여주고 싶어 했으나, 고통 속에 그대로 죽어 간 서옥경씨의 사과나무는 ‘미역국’이며, 히말라야 15좌를 완등한 산악인 염홍길의 사과나무는 그 산에서 죽어간 동료들이다. 온갖 병충해와 재해에 시달려 때로 낙과로 뒹굴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밭에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려는 착한 사람의 노력이 우리시대의 우울모드를 희망의 모드로 바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