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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8-한국대표 만화가 18명의 감동적인 이야기1.2>은 이처럼 ‘입지전적’이란 훈장을 달아줘도 조금도 손색없는 우리시대 내로라하는 ‘그림쟁이’ 18명의 삶을 ‘글’로 그렸다.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불같았던 고우영 방학기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고행석 황미나 등 18명의 만화가들이 성공을 쟁취하기까지 험난했던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18 - 세상을 살아온 오기였다
책은 그래서 이들 만화가들을 ‘18’이라 부른다.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가 되기까지, 숱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이들을 지탱해온 원동력이 바로 ‘18’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제목 ‘18’은 더 이상 욕처럼 들리지 않는다. 세상과 당당히 싸워온 ‘깡다구’로 다가온다.
잠시 만화를 접고 전자제품 외판원으로 나섰던 ‘아기공룡 둘리’의 작가 김수정은 책에서 그간의 인생을 이렇게 술회한다.
“장래에 대한 불확실이 영혼을 갉아먹었지만, 결코 펜과 종이를 놓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어지간하면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짓지 그러냐’는 스승의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은 구상한 캐릭터를 습관처럼 종이에 옮겼다.”
‘천원’에 얽힌 김성모의 에피소드는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1992년 겨울, 봉제공장에 취직한 동생 집에 얹혀살면서 사무치게 겪었던 빈곤은 김성모에게 뭐든 끝장을 보려는 ‘승부욕’을 아낌없이 불어넣었다.
동생이 깜빡 잊고 천원을 놓고 가지 않았다. 오후가 되니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은행 옆 건물을 떠올렸다. 그곳에 가서 버려진 장초를 비닐봉지에 담아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필터 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북받쳐 오르는 설움에 2시간을 내내 울어야 했다.
지겨운 가난은 속절없이 눈물만 흘리게 했다. 오랫동안 무명작가로 실컷 고생했던 ‘요절복통 불청객’의 고행석은 통닭 한 마리만 사다 달라는 딸아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돈을 꾸기 위해 공중전화통을 붙잡아야 했지만, 정작 허름한 바지춤에는 전화를 걸 동전조차 없었다. 또 ‘3년 내 승부가 안 나면 만화가를 그만둔다’고 했던 ‘식객’의 허영만도, 만주의 대부호에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임꺽정’의 고우영도, 원고를 팔지 못한 채 흙탕이 된 버스 바닥에 원고를 쏟고 눈물을 흘렸던 ‘레드문’의 황미나도 극한상황에서 오기로 버티며 꿈을 현실로 바꾸었다.
눈물로 ‘희망’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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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살 무렵 방바닥을 기어 뜨거운 물에 손을 넣어 왼손이 오리 손처럼 변한 ‘파페포프 메모리즈’의 심승현은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림에 녹였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사고는 나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루 생활비 2천원으로 대학시절을 보낸 ‘누들누드’의 양영순은 “네가 자리에 없는 날이 실기실이 문 닫는 날”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그림에 매진, 그간 다루길 꺼려했던 성(性)분야에 신선한 만화의 장을 열었다. ‘비빔툰’의 홍승우는 “시행착오야 말로 최고의 재산”이라며 “정체되지 않고 계속 움직여야 새로운 것을 그리게 된다”고 자기자극을 불어넣었다.
지은이는 “‘그러니까’가 아닌 ‘그럼에도’의 명제로 살라는 만화가 방학기의 말처럼, 이 책의 18명 만화가들은 상황 탓이나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이 명제를 스스로 증명했다”며 “이 책이 실업과 불황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만화가들의 삶이 희망이 되기 바란다”고 말한다.
‘18-한국대표 만화가 18명의 감동적인 이야기1.2’
장상용 지음 / 각권 9천8백 원
크림슨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