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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보도에 의하면, 벌써 대기업들이 거액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했다는 소식도 있고, 익명의 기부자들이 성금을 기탁하고도 그 이름을 숨기려는 애뜻한 미담도 전해진다. 나라든 개인이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힘들 때 서로 돕고 의지하는 우리네 미풍양속은 아직 변하지 않은 듯 하다.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지성과 양심을 실천하는 순수의 미학이다. 거기에는 무슨 이익과 반대급부를 생각하는 불순한 의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의상관(相依相關) 관계의 우주적 이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주고받는 관계로 되어있다. 어느 것 하나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서로 이웃하지 않으면 생존도 문화도 갈구할 수 없는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것은 휴머니즘의 출발점이요, 모든 종교의 탯줄이기도 하다.
오탁의 세상. 어둠 속에 갇힌 등불이 더 뜨거운 것처럼, 삶이 각박하고, 경기가 침체될수록 작은 온정이라도 그 향기는 진동한다. 거액의 뭉텅이 기부도 필요하지만, 역시 자선은 작은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작은 사랑, 익명의 나눔, 그것은 세상을 여는 문이다. 열쇠도 모자라 자동으로 잠금 장치가 되는 세상의 많은 문들이지만 익명의 기부자들처럼 남 몰래 세상을 열어주는 따뜻한 손들도 있다.
지난 한해 우리사회의 빈부격차는 더욱 커지고, 실질적인 빈곤층도 다시 늘어났다는 통계를 접한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 전체 국민의 5%가 전 국토의 2/3를 소유하고 있고, 전체 은행 고객의 2%가 전체 저축액의 56.7%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료도 있다. 그런가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 기초생활보장 조차도 받지 못하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생계형 자살’ 로 내 몰리는 실질빈곤층이 3백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나라 경제를 되살리는 것은 정치인들의 몫이요 기업인들의 수완인지 모르나, 이 어려운 세상을 살맛나게 하고, 희망의 새싹을 틔우는 것은 평범한 소시민들의 몫이다. 달마가 양무제에게 ‘무공덕’이라고 한 것처럼 사진 찍고 소문만 내는 것은 진정한 자선이 되지 못한다. 자선이 복전이 되는 것은 무주상 보시이기 때문이고,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 역전’이란 유행어를 낳으며 몰아쳤던 로또 열풍은 2년 동안 434명의 한국판 백만장자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중 총36명의 당첨자가 64억여원을 기부금으로 사회에 회향하였다고 한다. 2004년도에도 전년도 대비 당첨금 규모는 축소되어 1인당 평균 기부금은 줄어들었으나, 기부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힘들수록 고통을 나누고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 우리의 교육방식이다. 웰빙도 좋고, 해외여행도 좋지만 ‘카드빚 20만원’에 시달려 자살하는 우리들의 이웃인 생계형 자살자들을 생각해 보자. 물고기들도 목마를수록 거품을 뿜어 서로의 갈증을 달래주는 것이 그 진화의 본능이다. 종교인들의 자원봉사가 수행의 차원에서 실천되어져야 하는 것처럼, 나눔과 베품도 이제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져 찬바람 드는 빈부 갈등의 틈새가 메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