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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의 수호성자(Patron Saint)’으로 불리는 인도의 여성 법사 디파마(Dipa Ma Barua: 1911~1980). 그의 이웃이자 제자인 산디프 무추띠는 스승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머니이자 주부로서, 견처를 얻은 여성 수행자의 보기드문 표본이었던 디파마의 입적 순간은 극적인 생애 만큼이나 독특한 열반상을 보인 것이다.
조지프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잭 콘필드(Jack Kornfield), 샤론 살즈버그(Sharon Salzberg)를 비롯한 미국의 뛰어난 수행자들은 대부분 1970년대에 디파마로부터 위빠사나를 배웠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인격과 독특한 지도방식, 제자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에 매혹되었다.
조지프 골드스타인의 말이다. “우리의 일생동안 평범함을 벗어나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디파마가 그런 분이었다. 언제나 자비심이 넘쳐흐르던 그는 가장 고요한 평화를 간직한 분이었다. 그의 고요함과 깊은 자비심은 어느 수행자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샤론, 잭, 조지프는 디파마의 제자가 되어 인도 캘커타의 작은 아파트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그들은 미국 매사추세츠 바르에 설립한 위빠사나 명상센터에서 두 달간의 수련회를 열어 줄 것을 디파마에게 요청했다. 여기서 수백여명의 미국 수행자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수행에 깊이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디파마는 전통 위빠사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제자들이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챙김(mindfulness)할 수 있는 특별한 수행법을 고안했다. 그는 마음챙김이 말하기, 다림질하기, 요리, 쇼핑, 아기 돌보기 등 어떤 순간 어떤 활동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을 관찰하세요.”라는 말로 요약된다. 디파마는 일상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명상의 힘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기에, 추종자들은 그를 ‘주부들의 수호성자’란 별명을 붙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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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마는 1911년 3월 25일 미얀마와 국경이 맞닿은 동부 벵골의 마을에서 나니 발라 바루아(Nani Bala Barua)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은 벵골의 바루아족 혈통으로 인도 원시 불교도들의 후손들이었다.
비록 직접 명상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많은 가족들이 불교 의식과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린 나니는 특히 이런 불교의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동네 사원에서 공양물을 올리고 불상을 조성하는 스님을 돕기도 했다.
결혼후 27년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디파(Dipa)라는 여자 아이를 낳았고, 이 때부터 디파의 어머니라는 의미의 ‘디파 마(Dipa Ma)’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뱅갈어로 디파는 빛이었기에, ‘빛의 어머니(mother of light)‘라는 별명도 갖게 되었다.
얼마 후 디파마는 고혈압에 걸려 몇 년간 누워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남편 라자니는 엔지니어로서 풀 타임 근무를 하는 고된 와중에서도 그의 아내를 간호하고 걸음마 하는 어린 디파를 돌볼 수 밖에 없었다. 1957년 어느 날 밤, 그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온 뒤 디파마에게 아프다는 말을 한 뒤 불과 몇시간만에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디파마는 슬픔과 혼란에 휩싸였다. 10년이라는 기간에 그녀는 두 아이(유산)와 남편, 그리고 자신의 건강을 잃은 것이다. 그녀의 건강은 자꾸만 나빠졌고, 살아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명상 수행일 뿐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친척이자 친구인 아나가리카 무닌드라(Anagarika Mudindra)가 지도하는 미얀마의 타타나 예이크타(Thathana Mudindra) 명상센터에서 본격적인 수행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첫째 주의 명상기간 동안 그녀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삶을 통찰하는 체험을 얻는다. 그녀가 밤낮으로 지니고 있던 슬픔도 사라졌다. 그녀의 오랜 두려움도 사라졌으며, 전례없는 평정심과 사물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후 디파마의 수행은 극적으로 깊어졌으며, 그녀는 전통적인 관법의 다음 수행 단계로 나아갔다. 6년 뒤, 그녀는 또다시 독특한 수행 체험을 얻었으며, 심오하고도 궁극적인 변화를 감지했다. 53세의 나이에, 제한된 가르침과 수행 기회를 통해 해탈을 갈망한 지 30여년 만에 디파마는 처음으로 견성체험을 하게 된다. 이듬 해 집과 명상센터에서 수행을 계속한 후 그녀는 두 번째 깨달음을 얻고 육체적 정신적 상태 역시 거듭나게 되었다.
디파마는 자신의 변화에 놀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선해졌고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대들도 명상을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행복해 질 겁니다. 마술이 아닙니다. 오로지 믿고 따르세요.”
1963년 디파마의 스승 무닌드라는 그녀에게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통력과 영적 힘을 기르는 수행을 지도했다. 그녀는 특별한 집중력과 결점없이 계율을 지킨 수행자로서 선택된 것이었다.
1967년 인도로 돌아간 디파마는 제자들이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챙김(mindfulness)할 수 있는 수행법을 만들었다. 말하기, 다림질하기, 요리, 쇼핑, 아기 돌보기 등 어떤 순간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마음챙김을 가르친 것이다. 이후 디파마는 일상의 혼돈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명상을 보급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