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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대중 속으로…학과 개설, 서적 출간 붐
[ 2004 차문화계 결산 ]
다도는 이제 전문가들만의 고급 취미생활이 아닌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명원문화재단의 다도 시연장면.
차가 ‘마시기 까다로운 고급 음료’라는 이미지를 벗고 대중 곁으로 다가왔다. 지난해에 이어 우리의 의식주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 ‘웰빙(well-being)’ 열풍은 차문화계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음료 시장뿐 아니라 과자, 화장품, 속옷 등 차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선보여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고, 차에 대한 높은 관심은 대학 내에 관련 학과 개설과 차문화의 학문적 정립 시도로 이어졌다. ‘제1회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 ‘한국차학회 10주년 기념 국제세미나’ 등 굵직한 행사가 잇달았던 2004년 차 문화계를 점검해 본다.

▷먹을거리, 볼거리로 대중 곁 ‘안착’
2004년은 차문화의 ‘제2의 중흥기’로 불러도 좋을 만큼 차가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든 한 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녹차 바람이 가장 거세게 일어난 곳은 단연 식음료 시장. 기업들은 앞 다퉈 녹차 음료를 출시했고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등에도 녹차를 이용한 ‘그린 마케팅’이 활개를 띄었다. 뿐만 아니라 건강보조제를 비롯해 화장품, 속옷 등의 공산품에도 녹차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커피숍’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홍차나 녹차를 종류별로 구비하는 찻집이나 ‘녹차라떼’ ‘녹차케익’ 등을 판매하는 녹차 전문점도 속속 생겨났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차를 이용한 관광 상품 개발에 앞장섰다. 차를 단순한 먹을거리로서만이 아니라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하동야생차축제와 보성다향제, 문경찻사발축전 등은 이미 차인들의 ‘필수 관광축제’로 자리 잡았고, 전북 익산시와 무안군은 각각 임해사 터 야생차밭 복원과 초의선사 탄생지 성역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차제들의 이 같은 사업은 일반인들에게 차문화를 널리 알리고 우리 차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차 시장 개방
국내의 ‘녹차 붐’과는 달리 차계 전반에는 ‘중국차 열풍’이 그 어느 때 보다 거셌다. 전문가들은 WTO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라 우리나라 차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우려했고, 그것은 일정부분 현실로 드러났다. 차 시장 개방에 발맞춰 자사호 작가 초청 전시회와 동남아 차문화를 소개하는 다례시연 등이 마련됐고, 수입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도 늘어났다. ‘진짜다 가짜다’ 하는 진위논란이 식을 줄 모르는 보이차의 인기는 올해도 여전했다. 그러나 현재 외국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수입, 판매량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마련되지 않아 소비자들을 혼란시킨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국내 차 생산자들은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고 녹차의 고급화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 일환으로 전남 보성시는 올해 중국 선양시에 보성 녹차 직판장을 개설해 우리 차를 세계화하는 성공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차 품평 관심 확산
수입 차에 대한 높은 관심은 우리 전통 차문화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일부 차인들은 우리 차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차에 관한 정보 공유와 차 품평에 대한 인식을 높이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세계 속에서 우리 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차의 정확한 품질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뜻으로 개최된 ‘제1회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품평 행사로, 300여 종에 달하는 차 제품이 출품되고 1천5백여 명의 차인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차 품평대회’는 차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 ‘품다(品茶)’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였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한국차인연합회와 한서대 정인오 짱유화 교수는 지난 10월 서울 인사동에 ‘한국국제차엽연구소’를 열고 ‘차 품평사’ 교육을 실시하는 등 국내 차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구소측은 이르면 내년이면 국내에서 차 품평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차, 이제 학술로 정립
차 문화를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한 움직임도 일었다. 원광디지털대학과 목포대에는 차학과가 신설됐고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학원에도 차 관련 과목이 개설됐다.

차 관련 서적 출간이 증가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소설가 한승원 씨의 <초의>는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정찬주 씨의 <다불>, 김영무 씨의 <초의선사 장의순> 등의 소설도 선보였다. 또 故 천병식 교수의 <역사 속의 우리 다인>과 김대성 씨의 <초의선사의 동다송>, 정동주 씨의 <한국인과 차>, 윤병상 교수의 <다도고전>, 김정연 씨의 <중국차 이야기> 등이 눈에 띈다. 도서출판 이른아침은 ‘다유락 선고다인 총서’ 시리즈로 <금당다화> <한국의 차문화> 등 절판된 근현대 다서의 복간(復刊)을 시작했다.
학술대회의 성과도 풍성하다. 차문화의 학술적 정립을 위해 창립한 한국차학회(회장 신미경)는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국제심포지엄을, 천태차문화연구보존회는 창립 2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특히 김상현 교수(동국대)는 8월에 선암사에서 열린 ‘한국 전통차문화 심포지엄’에서 그동안 구전(口傳)으로만 존재했던 ‘구증구포’에 관한 문헌을 공개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해결 과제는?
웰빙 트렌드에 따른 녹차의 인기는 ‘시대적 요구’라 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녹차가 하나의 ‘건강식품’이나 ‘상품’으로만 다루어지면서 차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정신문화가 소외되었다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녹차가 단지 유행에 편승한 하나의 ‘인기 상품’에 그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차문화협회 김해만 사무처장은 “최근 녹차 붐으로 인해 급증한 ‘초보 차인’들을 진정한 차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차 단체들의 선결과제”라고 지적한다.

차 시장 개방에 따라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중국차와 다구들이 유행처럼 팔려나가는 것도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정인오 교수는 “어느 정도의 차가 수입, 판매되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차인들 스스로 차에 대한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계에서는 기독교와 천주교 차인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들 차인회는 올 한해 전국적인 조직을 이루고 미사나 예배 때 헌다례를 응용한 의식을 정립하며 차문화 확산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차인회는 지난 10월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입지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차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불교계에서도 포교의 방편으로서 차문화를 연구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 2의 도약을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국내 차문화계가 내년엔 좀 더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4-12-09 오후 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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