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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사가 위치한 자리는 바로 고려시대 지어졌다가 조선시대에 폐찰된 것으로 추정되는 100여 평 규모의 망일암이 있었던 절터라고 한다. 여기에는 몇 백 년을 하루같이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가 모든 중생을 편안케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망일암의 새벽 종소리가 청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문화를 대표하는 ‘청산팔경’의 하나였다고 하니, 그 소리의 깊이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백운사가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계획은 바로 그 종소리를 주민들에게 되찾아 주는 것이다. 백운사 주지 법명 스님은 “망일암 전체를 복원하기는 어렵겠지만 범종을 조성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매일 아침마다 자비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법명 스님은 노인 요양원 건립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젊은이들은 모두 마을을 떠났고 어린이와 노인들만 남아 있다. 돌봐줄 자식이 없는 노인들도 있고, 자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편안하게 요양할만한 곳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서다.
사실 백운사는 기도처이자 포교도량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마을과 인접해있기는 하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여서 기도하기에는 그만이다. 백운사의 어린이ㆍ학생ㆍ청년회 법회 역시 백운사의 자랑이다. 2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오며, 옥천을 대표하는 신행단체로 자리 잡았다. 학생회의 경우는 아이들 스스로가 법회를 꾸려갈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있다. 청년회원들은 농사일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일상에서도 법회를 거르는 법이 없다. 여기에다 매년마다 대불련 수련회도 열리고, 인근 군부대도 백운사에서 법회를 본다.
작은 절이지만 백운사가 우수한 포교도량이 되기까지는 주지 법명 스님의 노력이 컸다. 관음종 총무부장이기도 한 법명 스님은 이곳에서 24년 동안 밤낮으로 뛰었다. 지금도 대전교도소교화협의회 수석부회장, 옥천사암련 명예회장, 옥천경찰서 경승, 옥천향토연구회장 등 10여 개의 단체의 책임자이자 구성원으로서 포교활동에 여념이 없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백운사는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내일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