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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CM 플래너로 일하면서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오리온 초코파이 정’,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등의 광고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이강우. 그가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 주변의 일들, 광고 실무에서의 노하우 등을 묶어 <대한민국 광고에는 신제품이 없다>를 출간했다.
한 주제 당 10페이지 정도로 소개되는 에피소드와 저자의 단상, 그리고 거기서 이끌어내는 교훈은 그의 광고처럼 ‘사람 냄새’가 난다. 흔히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처세서에서 보여 지는 ‘성공하려면 이런 습관을 가져라, 난 이런 계획을 짜서 움직였다’하는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지, 주위 사람에게서 어떤 태도를 배웠는지를 겸손하게 풀어내고 있다.
업계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사람과 동업 관계를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다른 사람과 동업하여 프로덕션을 경영하려면 필요한 사람들끼리 만나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능력을 존중하고 신뢰를 가져야 한다. 내가 가진 아흔 아홉과 상대가 가진 하나가 똑같다는 이상한 수학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강우에게서는, 타인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비정한 사업의 세계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광고 실무 중 얻은 교훈을 정리한 제3장의 ‘믿어야 넘어 간다’, ‘내가 들어야 남도 듣는다’, ‘마음이 열려야 백배로 힘이 난다’ 편은, 다들 알고 있지만 눈앞의 이익을 놓칠까봐 실천하지 못하는 미덕의 힘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정직함, 양보, 그리고 탈권위적인 대화가 그것이다. 남들보다 앞서야만 하는 비정한 광고의 세계에서, 그가 전하는 처세술과 석세스 스토리는 자못 가슴이 훈훈해지는 종류의 것이다.
물론, ‘그의 시대’는 어느 정도 낭만적인 애티튜드가 통용되는 때였을 수도 있다. 그가 젊었던 70~80년대 사회는 지금처럼 꽉 짜인, 출구 없는 미로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얄팍한 효율성’과 ‘겁나는 합리성’만을 10년째 강조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런 미덕들의 가치를 다시 복원할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화려함과 명성, 높은 연봉 등을 고려하여 광고 크리에이터를 지망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광고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도 모두 품고 있으리라. 그런 사람이라면 광고업의 그 이면의 부분을 알기 위해서, 거기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한 광고실무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얄팍한 효율성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롱런한다는 값진 교훈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대한민국 광고에는 신제품이 없다’
이강우 지음
살림 /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