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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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가 수행자 외호해야
[한국불교 달라져야 한다]504호
얼마전 동창들 모임이 있었다. 모이면 정치부터 종교 얘기까지 다양한 토론이 넘쳐난다.

모임 끝무렵에 가서 한 친구가 나에게 불쑥 말을 던졌다. “야, 너희 스님들 아주 멋지더라!” 그 말이 진정 좋은 의미로 던진 것은 아니라는 것은 비아냥 대는 듯한 그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이어, 번쩍번쩍한 승복을 입은 어떤 스님이 최고급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무슨 큰 폭로거리인양 떠들어댔다.

“너네 목사님들은 안 그러냐?” 나의 반격이 가해졌지만 순간 나는 나의 성급함을 후회했다. “옛날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일화가 떠오르는구나. ‘대사 모습이 꼭 돼지 같구료’라는 이성계 말에 무학대사는 ‘전하는 부처님같이 보이옵니다.’ 했어. 이성계가 ‘서로 농을 하자고 했는데 웬 찬사요?’ 하고 인상을 찌푸리자 무학대사가 ‘본래 돼지의 눈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엔 부처만 보이는 법이옵니다’ 했단다.” 라고 말해주었어야 할 것을….

친구 말이 듣기는 싫었어도 한편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젠가 조계사 앞을 지나는데 여기 저기 많은 스님들이 대로변에 세워둔 승용차에 오르며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날은 중앙종회가 끝나는 날이었다. 대부분이 고급 승용차였다. 물론 스님들이라고 고급차 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때 무진장 스님이 생각났다.

내가 조계사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끌고 나왔다가 조계사 앞길에서 무진장 스님이 택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빈 차가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아 급히 스님 앞에 차를 세우고 어디 가시느냐고 여쭈니 법문하러 가신다고 했다. 제 차로 모시겠다고 하니 한사코 사양하셨다. 택시 타고가면 될 것을 무엇하러 갔다가 다시 오느냐며 기름낭비라고 했다. 이후 두 번 더 똑같은 일이 있었지만 스님께서는 늘 대중교통만을 이용하셨다.

일 때문에 바쁜 종단의 어른스님들이 차를 타시는 것까지야 어찌 언급할 것인가. 교단의 어른 스님은 타도 괜찮고 우린 타면 안되느냐고 항의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제 분수를 알고 지켰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구름 걷힌 하늘이 파랗듯이 우리들 모두 제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승가는 출가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 재가자들은 승가를 사표(師表)로 바른 실천행을 생활화했으면 한다.
재가자들이 스님들의 수행을 망친다고 흔히들 말한다. 물론 극히 일부의 흔적이겠지만 거대한 댐도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인해 무너지는 이치를 되새겨야 한다. 고급 차량과 고급 가사장삼을 스님들께 바치는 것만이 복 짓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외호(外護)가 무엇인지 새롭게 인식해야겠다. 언제 어디서건 스님들을 뵈올 때 공손한 자세로 예를 갖추자. 우리가 아니면 누가 우리 스님들을 위할 것인가.
김대원(의정부시 호원동) |
2004-12-06 오후 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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