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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오전 10시 30분 영결식의 시작을 알리는 5번의 타종이 덕숭산에 울려 퍼졌다. 떨어진 무궁화 꽃으로 쓴 만공 스님의 ‘세계일화(世界一花)’ 가풍을 이어라는 은사 고봉 스님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한 숭산 스님은 전 세계 30여곳의 홍법원 지원과 130여개의 선원을 개원,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힘써왔던 스님의 법신이 이승의 인연을 다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종정 법전 스님은 “겨울 순풍이 지난간 자리마다 실상이 드러나고 처처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문이 열리더니 서래의 일구를 남기고 숭산 큰스님이 환귀본처(還歸本處)하셨습니다”며 영결식 법어를 내렸다.
이에 앞서 장례위원장 종산(원로회의 의장)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큰스님! 이제 자애스런 진용과 사자후를 어디서 뵙고 들어야 합니까?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와 얼굴이다른 벽안납자들이 스님이 처처에 현신하시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히 오셔서 미륜(迷倫)을 구제하소서”라며 스님의 원적을 애통해 했다.
이어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부종수교(扶宗樹敎)하고 전법도생(傳法度生)에 앞장서오신 그 열정은 전무후무한 세계적인 선승으로 생불로 존중받는 법력의 바탕이 되었다“며 스님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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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영결식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증명), 원로회의장 종산(장례위원장), 총무원장 법장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원로 중진스님, 문화관광부 정동채 장관 등 정ㆍ관계 대표, 국내외 불자 사부대중 1만 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을 마친 후 숭산 스님의 법구는 인로왕번을 비롯한 각종 번과 만장을 뒤로 덕숭산 동쪽의 수덕사 다비장으로 옳겨져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시도 3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후 1시 30분경 거화됐다. 수덕사의 전통에 따라 스님의 다비식 이후 사리 수습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