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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승처럼 떠돌며 사경하듯 그림 수행
펜화가 김영택 씨, 디자이너에서 문화재 펜화가로 10년째
펜화가 김영택 씨.
“내 자신이 무색무취의 경지에 있을 때만이 진정 다른 사물의 본래 모습을 화판에 담을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어떤 고정 관념이나 뚜렷한 색채를 마음 속에 지니고 그림을 그린다면 그 색채로 밖에는 사물을 표현할 수 없지요. 마음먹는 다고 ‘나’ 라는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지만 그러기 위해 그림그리기 전 명상을 합니다. ”

탁발승처럼 전국을 돌며 사찰 건축은 물론, 정자, 석탑, 나무 등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펜화로 옮기는 김영택씨(60).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수행의 방편으로 사경(寫經) 하듯이 그는 온 마음을 곧추세워 펜 끝에 자신을 몰입한다. 자신이 그리는 그 대상물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10여년동안 김영택씨는 합천 영암사지, 장성 백양사 범종각, 거창 요수정, 대전 남간정사, 통도사 범종루 등 50여 사찰의 불교 전통 건축물을 펜화로 옮겼다.

그는 “펜화는 사진과 달리 건축물 주변에 설치된 인위적인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어 대상이 주는 감동을 제대로 효과있게 전할 수 있다”며 “펜화에서 가장 표현하기 힘든게 원근감인데 그것은 펜의 굵기로 조정 한다”고 펜화의 특성을 설명한다.
김씨의 그림은 특히 먹물펜의 굵고 가는 선과 망점을 연상시키는 끊는 선 처리로 대상을 세밀하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너무 세밀하기에 얼핏 보면 그의 그림에는 삼베의 성성한 느낌이 전해진다. 한뜸 한뜸 바느질 하듯 그려 나간 나무와 숲에서는 자연의 기(氣)를 그대로 화폭에 담아낸 것 같다. 사진이 놓칠 수 있는 대상의 기운까지 응축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펜화를 두고 화단에서는 한국 산수화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고도 말한다.

펜화라는 신 장르를 개척한 그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광고 디자이너 였다.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디자인 회사를 차린 그는 1993년 ‘디자인 대사’란 칭호를 받으며, 세계 48명 디자이너중의 하나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때 우연히 방문한 파리에서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

“파리 루부르 박물관을 방문했다가 캘린더 엽서 등 기념품 가게의 상품 절반 정도가 펜화인 것을 발견하고 펜화를 통해 우리 문화재를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습니다.”

어찌보면 디자이너로서 최정상에 있었지만 강렬한 욕구로 다가오는 펜화에 대한 열정앞에선 명성도 무의미했다. 펜화를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50이었다.

김영택 씨의 작품 "문경 봉암사 일주문"

그 때부터 줄곧 10여년 동안 주말이면 매주 주말, 화구를 꾸려 심야버스를 타고 사찰과 문화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나섰다. 특별히 어디를 먼저 정해놓고 간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인연의 끈대로 움직였다. 역력히 그의 모습은 ‘그림 수행’을 하며 떠돌아 다니는 탁발 화가였다. 하루 18시간을 그림에 몰두하며 씨름했다.

현재까지 130점을 완성했지만 고즈넉하고 정숙한 분위기 탓인지 그래도 그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펜을 움직일 수 있는 곳으로 사찰을 꼽는다. 이제는 하도 돌아다녀 절집이 자기집보다 더 편하다고 한다. 그중 불보종찰 통도사에서는 1년이상을 산내암자에 기거하며 대웅전과 불이문 등 15점을 그렸다.

뿐만 아니다. 그의 펜 끝에서 섬세하게 다시 태어난 우리 절집과 정자, 서원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채 그 자체로 화판위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흑과 백, 곡선과 직선, 길고 짧은 선의 굵기로 자연과 감정이 고스란히 그의 그림속에 녹아 있다.

처음에는 사찰과 우리 문화재가 좋아 그저 스케치 정도에 그쳤는데 그리면 그릴 수록 주변과의 조화가 눈에 들어 왔다. 그 정점이 바로 경북 문경 봉암사 일주문이다. 계곡물과 바위, 나무들을 배경으로 오롯이 서 있는 일주문은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진다. 청송 방호정, 영동 강선대, 담양 소쇄원 등의 작품은 정자 건축의 아름다움과 함께 주변 경관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이렇듯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과 자연과의 절묘한 조화에 매료돼 기록화로 남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흔쾌히 ‘무아(無我)의 미’라고 대답한다.

“우리나라의 백자나 청자에 작가의 이름이
김영택 씨는 내자신을 끊임없이 버리는 무아의 경지만이 사물의 진면목을 화판에 그대로 옮길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박재완 기자
새겨져 있으면 100% 가짜입니다. 그 시대의 도공들은 작가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그릇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건축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이나 일본의 건축가들은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건물을 지었지만 우리나라 고건축가들은 철저히 내가 배제된 ‘무아의 미’를 강조했습니다.”

그 ‘무아의 미’를 그대로 담으려 노력하다보니 그의 그림을 마주대하면 마음이 차분해 지고 ‘선(禪)’을 떠올리게 하는 편안함이 전해진다. 가는 펜으로도 먹의 농담을 살아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은 더 그릴 생각입니다. 1년동안 20여점을 그린다면 20년이면 500여점 정도는 더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창작에 대한 의욕을 드러낸 그는 또 오늘 화구를 급히 꾸려 우리 문화재를 친견(?)하러 길을 나선다.

현재 지방 순회전중인 김영택씨의 그림을 만나려면 12월 10일까지는 서울 기업은행 본점, 19일까지는 부산 현대백화점 갤러리를 찾으면 된다.
김주일 기자 |
2004-12-06 오전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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