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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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스님의 스님이야기 - 적음 스님(상)
오랜 도반 적음(寂音) 스님이 시집을 한 권 보내왔다. 그간 쓴, 그것도 한국 최초로 붓으로 쓴 아주 좋은 시집이었다.
한지 재질로 만든 그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묵향을 느꼈다.

사람은 늘 가고 오지만, 사람은 늘 그렇게 오고 가며 살지만, 그의 행방은 늘 묘연했다. 우리네 스님들의 삶이 그러하지만, 그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온 천지 온 산하를 떠돌며 그는 살았다. 도토리 주워 먹고 고구마 캐먹고 외진 저 변방의 어느 산자락에서 그는 지금도 머물고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그의 행방을. 다만 그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네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음을 그런대로 추측할 뿐이다.

적음 스님은 열다섯 살 때 경주 함월산 기림사로 출가하여 대구 동화사 혜붕 노스님께 내전(內典)을 이수하고 중강으로 한참동안 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나는 조금 놀랐다. 적음 스님과 대학, 이런 것은 어쩐지 ‘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것도 동국대학 불교학과가 아닌 일반대학. 그것도, 그것도 서라벌 예술대학이라는 생판 듣지도 못한 학교의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는 것은 나를 참으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스님은 남산 기슭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 올리면서, 그렇게 어렵사리 학교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핍박한 삶의 한 가운데, 그러나 그는 묵묵히 그것을 견뎌냈다고 들었다.

그의 학교 친구들과 후배들은 그를 일컬어 ‘사운드 오브 사이렌스’라고 하며 웃어댔다. 법명 ‘적음(寂音)’을 그렇게 그들대로 번역하며 즐거워했던 것이다.
그의 별명은 ‘재봉틀’이다. 한 번 웃기 시작하면 마치 털털거리는 재봉틀 같다는 게 그의 주변, 후배 친지들의 아름다운 하나의 모습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진정한 무소유(無所有)의 삶. 스님은 아직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는 그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생(生)을 지금껏 영위해 오고 있다.

적음 스님, 그런 그가 몇 년쯤 전에 토굴을 하나 마련했다. 너무 떠돌다 보니 심신이 지쳤는지, 그냥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는지, 어떻든 그는 허물어져 가는 외진 농촌의 농가를 사서 수리해서 산다.

토굴의 이름은 일소암(一笑巖)이다. 세상만사 한 번 웃고 나면 그 뿐이라고 그렇게 지었는가. 한 번 웃으면 만사가 형통이라고 그렇게 지었는가. 일소, 일소, 일소, 모든 번뇌를 잊고자, 그렇게 일소로 흩날려 버리자 그리하여 그렇게 지었는가.
저 먼 옛날 신라적, 서라벌 경주 남산에서 대안(大安) 스님이 가끔씩 장안에 나올 때면 대안, 큰스님 대안 스님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 대안, 대안, 대안 이러면서 다녔다. 적음 스님, 그도 앞으로 일소, 일소, 일소 하면서 서울 장안을 누빌지도 모른다.
건강하고 묵묵한 적음 스님, 그를 생각하며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저녁에

왜 그처럼 늦게 연락을 주었는지 어제는 감꽃이 지기 시작하더니 초가을 바람 바람이 벌써 한 차례 비를 몰고 가는구나.

저녁엔 스산해서 한 잔 소주로 목을 달랬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놓아두고 그렇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 저녁을 꾸려가야 하는 것인가.

연락은 한 차례 내리는 비처럼 왔다 갔다.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적음 스님은 해마다 한 겨울이면 경기도 가평의 북한강 굽이치며 흘러가는 대성리로 갔다. 거기서 닷새 내지 일주일 정도 머물며 젊은 화가들과 함께 ‘오늘의 그림’에 대해 얘기하며 찬바람 부는 강가를 거닐었다.
한꺼번에 백 여 명 정도가 모이는 거기서 그는 꼬박 십 년을 해마다 그렇게 보냈다. 십 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겨울 대성리를 찾았고, 거기서 젊은 영혼들을 만났다. 젊은 영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젊은 영혼들을 위해 노래했다.

그의 시 ‘겨울 대성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지인들이 ‘겨울 대성리 전’을 기획하고 그를 찾아와 동참할 것을 요청했을 때 그는 몹시 망설였다고 했다.
그러나 끝내 그는 흔쾌히 동참했고, 수 백명 관중이 모인 강가의 비닐하우스에서 시 ‘겨울 대성리’를 읊고 한 시간여 강연하면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계속)

* 지현 스님은 1971년 범어사로 출가, 현재 봉화 청량사 주지로 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종단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있으며, ‘좋은 벗 풍경소리’ 총재와 ‘함께 하는 시민행동’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2004-12-06 오전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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