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고 장례식에서는 한 편의 시가 낭독됐다. 유키나가 하늘나라로 떠나기 4개월 전에 쓴 ‘생명’이란 시였다.
“생명은 굉장히 소중하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건전지 같은 거다.
하지만 건전지는 언젠가는 다 닳아 없어진다.
생명도 언젠가는 닳아 없어진다.
건전지는 바로 새 것으로 갈아 끼우면 되지만,
생명은 쉽게 갈아 끼우지 못한다.
…(중략)…그래서 나는 생명이
‘나 피곤해 죽겠어’
하고 말할 때까지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아갈 테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유키나. 시에서 썼던 것처럼 생명의 건전지가 다할 때까지, 그래서 ‘닳아 없어지는’ 순간까지 정말로 열심히 살았던 소녀였다. 병마가 덮쳐온 다섯 살 때에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의연했고,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빠진 머리에도 “이러다 빡빡 대머리되겠다”며 늘 웃음을 지어보이던 천진난만한 ‘빨간 두건’의 소녀였다. 또 “왜 하필 나야”하며 울부짖는 병실 친구들에게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격려하며 밥을 먹이던 어린 천사였고, 약 먹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약을 먹이던 ‘꼬마 해결사’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밤이면 남몰래 울음을 삼키던 평범한 소녀였다.
<건전지가 다하는 날까지1>은 이처럼 어린 몸으로 난치병과 싸웠던 유키나를 비롯해 병과 힘겹게 싸운 아이들의 진실한 ‘생명’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나는 약하지 않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중학교 1학년 이시타 케이, “괜찮아, 난 괜찮아”하며 자기 주문을 걸었던 중학교 1학년 헴미 히토미, 엄마와 쇼핑하는 것이 꿈이라 말했던 4살의 사토 유키 등이 주인공들이다.
| ||||
때문에 이 책을 눈으로 쫓고 있다보면 활자가 금세 흐려진다. 눈물이 고이기에 그렇다. 비록 어린이들의 이야기지만, 우리 어른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특히 두 돌 3개월 만에 소아암 진단을 받고 5살 때 세상을 떠난 사토 유키의 시 ‘약’에서는 삶의 비장함마저 묻어난다. “맛있는 약은 이 세상에 없나요?”라고 물었던 유키가 “이제부터는 약도 열심히 먹을 테야”라는 유키의 마지막 시구에서는 병마와 정면을 맞서 살아가려는 강한 ‘생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키의 어머니 사토 히로미 씨가 다섯 살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딸을 그리며 쓴 글에서는 부모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물약 가루약 가리지 않고 참 많이도 먹었지요. 약을 먹고 바로 토해낸 때도 많았어요. 그러면 어린 마음에도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참 열심히 약을 먹었는데…. 그래도 혈압을 낮추는 약은 정말로, 정말로 싫었나 봅니다.”
열다섯 해도 다 못 채우고 떠난 사카모토 마사미의 ‘마지막 치료’에서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어린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번만 잘 참아내면 / 건강해질 수 있다 / 병이 나을 수 있다 /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 집에도 돌아갈 수 있다 /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할 수 있다.”
어린이 병원학교에서 나눈 아이들의 우정도 눈물겹다. 지금은 병을 이겨내고
| ||||
“유키나는 2년 전부터 줄곧 병원에서 산다 / 매일 치료 때문에 힘들어한다 /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울고 있을 땐 / 자기가 아픈 건 말짱 잊어버리고 / 금세 쪼르르 달려가 아픈 친구를 달래준다 / 가아~끔 / 밤에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 언제나 다른 친구들을 달래주는 유키나가 울면 /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미안해 달래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유키나.”
나가노 현 어린이 병원학교 야마모토 아츠오 담임은 이 책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치료에 임하는 아이들에게서 천진난만하면서도 귀여운 어린 수도승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치료하는 고행 속에서 얻은 ‘뭔가’를 확실하게 마음속에 간직한다면, 아이들은 분명 아픈 만큼 아름다워진다는 깨달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픈 만큼 아름다운 아이들의 목소리
‘건전지가 다하는 날까지1’
은방울꽃모임 엮음 / 황소연 옮김
한울림 펴냄 / 8천5백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