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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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는 자’의 의미 일깨운 김춘수시인 타계
‘세계는 의지의 산물’, 만법유식(萬法唯識) 노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꽃을 바라보고 꽃에 이름을 불러주는 ‘보는 자’의 의미를 일깨워준 <꽃>의 시인 김춘수 시인이 11월 29일 오전 9시쯤 타계했다. 향년 82세.

김춘수 시인.
정작 자신은 크리스천이었지만 그의 시가 던져준 존재론적, 인식론적 메시지는 많은 불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만공 선사의 “보는 자가 여래다”라는 법문을 상기하는 불자들은 ‘꽃’에 이름을 불러주고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공(自性)’이 누구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음직 하다.

<꽃>에 대해서 불자들은 때로는 선(禪)적으로, 때로는 유식학적으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정신문화연구원 한형조 교수는 그의 시를 유식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김춘수 시인의 <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생판 모르는 도시나 나라인데, 누군가가 거기 있거나 살았다는 기억으로 하여 아주 가깝게 다가오는 그런 경험 말입니다. 역시 세계는 주관적으로 <의미화>되어서만 존재하는 무엇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네이버 아이디 srmttoh가 그림.


한 교수는 쇼펜하우어의 책 제목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인용하며, “우리가 눈이 있어 사물을 보게 되었고, 귀가 있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려는 <욕망>이 눈을 만들었고, 들으려는 <의지>가 귀를 만들었다”고 해석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불교에 매료되었던 쇼펜하우어의 사상과 부합되는 면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세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 전에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명저대로, ‘세계는 의지의 산물’입니다. 세계는 그 의지를 통해 구성된 표상일 뿐입니다. 이를 불교식으로 번역하면 곧 <법(法, 객관적 실제)이 아닌 상(相, 주관적 세계)으로서의 세계> 정도가 되겠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불교를 따라, ‘우리가 아는 세계는 <의식>으로부터 파생되었거나, 그 활동의 결과’라는 것을 알리고자 합니다.”

한 교수는 유식에서 말하는 변계소집성(計所執性), 즉 '인간의 의지와 표상에 의해 드러난 세계'를 김춘수의 <꽃>은 드러내고 있다고 풀이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꽃>에서 처럼 내가 만물(色卽是空의 色)을 만물이라고 인식해야 만물인것이지, 만물이 나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의식일 뿐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는 것이다.

만년의 김춘수 시인.
그러나 <꽃>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견강부회적인 불교적 해석에 그칠 수도 있다. 정작 크리스천인 그에게 있어 꽃에게 의미를 부여한 존재는 불자들이 생각하는 자성(본래면목, 불성, 주인공)이 아닌 하느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꽃의 시인이 하늘의 꽃밭으로 떠났으니, 그가 당도한 곳은 과연 천국일까 극락일까. 고인을 추모하며 그의 시 <꽃>을 다시 한번 감상해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 연보

△1922. 11. 25 경남 통영 출생
△1939 경기중 4년 수료
△ 1940 일본 니혼(日本)대 예술학원 창작과 입학
△1942 일본 천황과 총독정치를 비방해 7개월간 헌병대와 경찰서에 유치. 니혼대학 퇴학
△1944 부인 명숙경(明淑瓊) 씨와 결혼
△1946∼51 통영중, 마산중ㆍ고 교사
△1946 '애가' 발표
△1948 첫 시집 '구름과 장미' 펴냄
△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펴냄.
△1960∼78 마산 해인대(경남대 전신), 경북대 문리대 교수
△1974 시선집 '처용' 펴냄
△1977 시선집 '꽃의 소묘', 시집 '남천(南天)' 펴냄
△1979∼81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1980 시집 '비에 젖은 달' 펴냄
△1981 제11대 국회의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6∼88 방송심의위원장, 한국시인협회장
△1991 시론집 '시의 위상', 시집 '처용단장' 펴냄
△1992 시선집 '돌의 볼에 볼을 대고' 펴냄, 은관문화훈장 수상
△1993 시집 '서서 잠자는 숲', 산문집 '여자라고 하는 이름의 바다' 펴냄
△1994 '김춘수 시전집' 펴냄
△1997 장편소설 '꽃과 여우' 펴냄.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8 제12회 인촌상 수상
△1999 시집 '의자와 계단' 펴냄, 부인 명숙경 여사와 사별
△2002 시집 '쉰한 편의 비가' 펴냄
△2004 '김춘수 전집' 펴냄,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수상
김재경 기자 | jgkim@buddhapia.com |
2004-11-30 오후 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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