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9. 남북국시대 ①
신라를 성덕왕이 즉위하면서 나라가 평온상 상태로 당(唐)과 교육이 많아지고 학승(學僧)이나 선비들이 입당유학 하는 일이 잦았다. 혜초가 인도에 까지 이르고 사천(四川)의 다사(茶史)에 큰 별로 남은 무상(無相) 스님과 중국 지장신앙의 근간이 된 지장 김교각 스님 두 분은 모두 왕실의 고귀한 신분으로 입당하여 불교사에는 물론, 다사에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중국도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선풍을 일으키고 서당지장이 선과 차를 엮었으며, 현종이 즉위하여 국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특히 육우(陸羽)가 출생하였으며 일본에도 <일본서기>가 쓰여지고 제도가 갖추어진 시기였다. 우리의 차가 중국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입었다기 보다는 무상이나 지장 스님이 활약한 기록으로 본다면 우리 차종(茶種)이나 다법도 중국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① 정중무상(靜衆無相) 스님(684~762)은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728년 입당하여 처적(處寂)을 만나고 청성산(靑城山)으로 들어가 노장학설과 부합하는 삼학(三學, 無憶, 無念, 莫忘) 이론을 창출하여 마조에게 영향을 주었다. 대자사(大慈寺)에 주석하여 정중종(靜衆宗)을 창시하여 달마의 정통을 이었다. 특히 무상선다도(無相禪茶道)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
② 지장 김교각 스님도 왕손으로 입당하여 구화산을 중심으로 지장신앙을 심었으며, 신라의 다목(茶木)을 가져다 심었다. ‘화성사 지장전’이나 ‘전당시’에 그의 다시(茶詩)가 전하며, 지금도 매년 구화산에는 그를 따르는 신도와 차인들이 운집하고 있다.
③ 충담 스님은 경덕왕 때 ‘찬기파랑가’와 ‘안민가’를 지은 분으로 삼월 삼짓날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헌다하고 돌아오다가 귀정문에서 왕의 부름을 받고 차를 올린다. 그가 다통(茶筒)을 메고 있다가 즉석에서 차를 끓여 올린 것으로 보아 차생활의 보급과 헌다의 예를 짐작할 수 있다.
④ 이백은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족질(族姪?)인 중부(中孚) 스님의 옥천 선인장차(玉泉仙人掌茶) 얘기는 유명하다.
⑤ 봉연(封演)은 당나라 천보연간 사람으로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 10권을 썼다.
⑥ 육우가 이제물(李齊物)을 만나 추부자의 별서에서 본격적으로 차공부를 했다.
⑦ ‘전다기언’은 바이사가 1857년에 쓴 차에 대한 기록으로, 천평대(天平代)에 차를 심고 마셨다고 적혀있다.
<한국>
남북국시대
702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705 지장 김교각 스님 출생
707 봉덕사 창건
723 혜초의 인도순례
724 상원사 창건
725 상원사 동종 주조
728 무상(無相) 스님 입당(入唐) ①
729 지장 김교각 스님 중국에 다목(茶木)을 심다 ②
742 김흠영 등 187명이 일본 사신으로 감
745 충담(忠談) 스님의 다통(茶筒) ③
<중국>
당대
701 이백(李白)의 출생(~762) ④
709 마조도일의 선다행(禪茶行)
712 당 현종(玄宗) 즉위
718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함
733 육우 출생
735 ‘다(茶)’자가 보임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 ⑤
747 육우가 이제물을 만나다 ⑥
<일본>
나라시대
702 율령(律令) 반포
712 고사기(故事記) 녹법(祿法)을 정하다
720 <일본서기>
@ 전다기언(煎茶綺言) 천평대(天平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