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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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 꿈꾸는 청정지역 불심도 무진장!
지역불교 현장을 가다-전북 남원ㆍ무주ㆍ진안ㆍ장수
다양한 생태 공동체운동을 펼치고 있는 실상사는 지난해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출범과 함께 생명과 평화의 성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북의 동부 산악지역을 일컬어 통칭 무진장이라 부른다. 무주 진안 장수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르는 명칭이다. 오지와 다름없던 이 지역은 근래 들어 청정지역으로 각광 받으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도로가 개설되고 교통수단이 발달되면서 사람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주인구가 늘어나기보다 대부분 ‘왔다가는’ 유동인구이다. 갈수록 농촌의 공동화는 심화되고 그나마 남아있는 이들은 노인뿐이다.

이런 시대 흐름 속에 농촌지역인 남원과 무진장 불교계도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어린이법회를 찾아보기 힘들고, 중·고 학생회는 아예 사라져 회생의 기력마저 없다. 청년회도 그러하고 이름뿐인 신도회는 활동이 정지된 지 오래다. 사찰에서 이뤄지는 법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음력 초하루, 보름법회가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이 지역에 불법(佛法)이 중단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려울수록 더욱 빛을 발했던 것이 호남불교였기 때문이다. 전북 동부지역 불교계의 포교를 위한 고군분투는 그대로가 수행이며 정진이다.

◇남원
구산선문의 최초 가람지 지리산 실상사(주지 종고)는 21세기 들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실상사는 ‘올바른 승가상의 확립’과 ‘승풍진작’을 내걸고 결사에 들어간 ‘선우도량’의 근본도량이 되면서 뉴스의 중심부로 부상했다.

이후 승,재가가 함께하는 공동체운동으로 귀농학교, 직영농장, 대안학교(작은학교) 등을 운영하며 생태공동체를 실현해 가고 있다. 또한 ‘(사)한생명’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통해 정토세계 실현을 구체화하고 있다.

지역공동체의 일환으로 사하촌 산내면에 복지회관을 건립하고 지역민을 위한 건강사랑방, 스포츠댄스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농업인 센터와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소외되기 쉬운 농촌의 여성과 어린이 복지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결성된 지리산생명평화결사는 종교와 이념을 떠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생명평화탁발순례단(단장 도법)이 전국을 순례중이다.

남원불교사암연합회장과 남원불교대학장을 맡아 남원불교를 이끌고 있는 실상사 주지 종고 스님은 “남원은 역사적으로 불교문화와 함께한 고장으로 시민과 불교가 뗄 수 없는 관계이다”며 “시민이 참여하는 불교문화 개발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남원지역 불교는 승ㆍ속이 재정과 운영 등 역할분담으로 지역불교발전을 꾀한다. 매년 연합 체육대회를 통해 불자들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있다.
지리산 실상사와 함께 남원시내에 자리한 선원사, 대복사도 남원 불교의 중심에 있다.
남원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선원사(주지 보관)는 근래 들어 남원불교대학과 함께 남원불교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연꽃유치원은 전북 동부지역 유일의 불교유치원으로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연꽃유치원이 운영하고 있는 통학버스는 국내에 하나뿐인 ‘어린이 전용버스’이다. 연꽃유치원은 500여 평의 넓은 부지에 70여명의 어린이가 꿈을 키우고 있으나 지역인구가 줄고 있어 매년 신입생 모집철이면 몸살을 앓는다.

선원사 담을 헐어 꾸민 불교서점 ‘깨달음’도 포교에 한몫을 한다. 깔끔하게 단장된 매장에는 불교서적은 물론 불교관련 팬시용품을 함께 전시해놓고 있어 일반시민들의 발걸음도 멈추게 한다.
주지 보관 스님은 “남원불교는 사부대중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대형공간이 없다”고 지적하고 “지난해 추진하다가 무산된 불교회관 건립을 위해 다시 힘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남원불교의 숙원사업인 불교회관은 종파를 초월한 불교문화공간으로 108평 규모에 불교대학은 물론 각종 신행단체가 상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회, 청년회를 주축으로 남원불교를 이끌었던 대복사(주지 혜견)는 최근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 6월 부임한 신임주지 혜견 스님은 중단된 청년회를 우선적으로 재결성하고, 내년부터 학생회를 다시 살린다는 것이다. 또한 폐쇄된 대복사 불교회관을 수리해 차와 예절을 교육하는 문화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복사는 11월 25부터 3개월 과정의 ‘차문화 강좌’를 개설했다.

지역사찰들의 활동과 함께 남원불교대학의 역할도 눈에 띈다. 1993년, 실상사 도법 스님을 주축으로 남원불교대학이 개설되면서 남원은 사찰불교에서 대중불교로 포교의 폭을 넓혔다. 남원불교대학의 운영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종파를 초월해 스님들로 구성된 지도이사회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재가자로 구성된 집행위원회가 운영을 맡고 있다. 이처럼 승,속이 재정과 운영을 분리해 역할을 분담함에 따라 불교세가 열악한 남원에서 14기에 걸쳐 400여 명의 학인을 배출하게 됐다.

남원불교대학 졸업동문들을 중심으로 감로회(포교사단), 심우회(회장 양만진·50대이상 거사모임), 불인회(회장 이동희·40대 불교인모임) 등의 신행단체가 출범했고, 남원불교산악회(회장 김광석), 불교대학 학생회와 함께 남원불교신행단체 연합회(회장 이정섭)가 결성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남원불교대학 부학장 도륜 스님(연화사 주지)은 태고종을 중심으로 지역불교화합과 각종 불교행사의 일선에서 뛰고 있으며, 인월 영선사 주지 월공 스님은 인터넷상에서 ‘남원불교(http://cafe.daum.net/nbulgyo)’를 운영하며 온라인 포교를 선도하고 있다.

◇무주 진안 장수
인구 2만 7000여명의 무주는 10여개 사찰이 어렵게 포교에 임하고 있다. 그나마 구천동 백련사, 적상산 안국사가 청정지역 반딧불 서식지로 알려지면서 관광사찰로 명맥을 이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농촌 인구는 줄어들고 노인들만 남아, 교통이 불편한 산중사찰을 찾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회는 물론 신행단체의 움직임이 전무하다.

적상산 안국사(주지 원행)는 1995년 무주양수발전소 건립으로 수몰되고 호국사터로 이전해 오늘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해발 1000m가 넘는 위치에 자리해 있지만 버스가 경내까지 진입할 수 있어 외지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내에 자리한 성보박물관에는 원행 스님이 세계 22개국에서 수집한 각국의 불상 1000여점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터 ‘나눔의 집’ 원장을 겸하고 있는 주지 원행 스님은 안국사 진입로 초입에 노인 요양시설 ‘적상원 무우수마을’을 설립하고 개원을 앞두고 있다. 스님은 또한 무주불교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무주불교대학을 개설했다. 1년 과정인 무주불교대학은 1기 50여명이 졸업하고, 75명의 학인이 재학 중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전선자 씨가 무주불교대학 동문회장을 맡아 지역불자들을 엮어가고 있다.

백련사(주지 계현)가 자리한 구천동은 조선 시대 유학에 밀려 숨어든 승려들이 둔을 치고 정진하던 골짜기로 그대로가 불교성지이다. 워낙 깊은 오지여서 자체 신도는 거의 없고 수행자와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깊은 골짜기 끝에 자리한 백련사는 10여개의 전각이 대가람을 이루고 있어 옛 구천 명의 승려들이 다시 사는 듯 하다. 백련사를 찾는 관광객과 등산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서포교를 기획하고 있다.

진안지역 불교도 상황이 무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이산에 자리한 금당사, 탑사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지역불교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편이다.

금당사(주지 성호)는 최근 대대적인 불사중이다. 나옹 선사가 오도한 고금당 복원과 금당사 도량정비 등으로 성역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5일마다 열리는 진안장날에는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복지사업일환으로 금당사에 무료요양원을 세웠다. 성호 스님은 지난해 나옹장학회를 만들어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54명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한국의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만불탑이 있는 탑사(주지 혜명)도 대사회사업을 위해 힘쓰고 있다. 15년 전 발족한 ‘갑룡장학회’는 지난해까지 매년 1000만원의 장학금을 진안지역 불우청소년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이 장학회는 탑사 만불탑을 세운 이갑룡 할아버지를 추모해 장손자 혜명 스님이 설립했다. 혜명 스님은 “평소 조부님은 나보다 남을 위하고, 봉사하며, 베풀고 살라했다”고 회고한다. 1993년, 혜명 스님은 2년여에 걸쳐 전북지역 사암을 직접 답사하고 사비로 ‘전북불교연감’을 편찬해 전국 도서관과 일반에 보급했다.

1969년, 법륜 스님이 장수 팔성사에 왔을 때만 해도 초막법당 한 채였다. 1km에 걸친 진입로는 밭두렁이었고 신도들은 1년에 한두번 찾을 정도였다. 그랬던 사찰이 30여년만에 극락전을 비롯한 전각과 요사채에 ‘성적선원’까지 갖춘 대가람으로 일신했다. 깊은 산중의 사찰이 이렇게 변하기까지의 흐름자체가 오늘의 장수불교 역사라 할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해도 장수지역에 팔성사 이외에 유력 사찰이 없어 모든 일을 외롭게 해야만 했다. 지금도 법륜 스님은 전주·익산 불교대학과 지역 중·고교 교양강좌에 나가 대중교리강의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이제 팔성사는 산사체험관 건립을 준비중이다. 여름에도 모기, 파리가 없는 고산지대이기에 주말참선, 108참회, 산중농사체험 등의 수련회를 통해 사찰과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다.

장계 성관사는 10년전 전국의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던 월성 스님이 주석하면서 도량이 크게 변모하고 있다. 스님은 도량정비뿐 아니라 대각선원을 열어 사시사철 눈푸른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장수 번암 용성 스님 탄생지는 장수군과 도문 스님의 원력으로 성역화 사업이 펼쳐지고 있으며 내년 봄 전체불사가 회향된다.
이준엽 기자 | maha@buddhapia.com
2004-11-27 오후 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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