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한데로 내몰리던 IMF시절, 홍종덕(64ㆍ조계사 문수법회장) 거사에게도 여지없이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잘나가던 대기업 영업이사직을 내어 놓은 홍 씨. 막막한 마음에 전국을 유람하며 절을 떠돌았지만, 절마당을 휘감던 푸른 안개도 능선을 타고 오르는 붉은 태양도 그에겐 아무런 약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조계사 앞마당 한 귀퉁이에서 ‘한글로 푼 연화의식문’을 만나게 된다.
“불교식 상례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그리고 육신을 떨치는 그 순간에 염불로서 생의 편안을 기원할 수 있는 ‘염불봉사’라는 방편에 매료됐지요.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홍 씨는 3개월간의 장례의식 교육을 시작으로 불교에, 그리고 염불봉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돌아가시는 분들은 약속도 없이 떠나는지라, 부름이 있는 날이면 그 어떤 약속도 모임도 제치고 장례현장을 찾았다. 환갑잔치가 있는 날에도 예외가 없어 60년 그의 행적을 이름모를 이의 빈소에서 곱씹을 정도였다.
진실한 마음은 또다른 진실 앞에서 거짓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그는 연고없는 이들의 시다림(망자를 위한 염불)을 무료로 집전하며 타종교인의 마음을 열었다.
염불봉사에 감동받은 한 망자의 가족은 상을 치른 이후 가족 전원이 조계사 불교대학에 등록해 홍 거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내의 소리없는 내조가 없었더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그 언제가 됐건 묵묵히 목탁과 의복을 내어주는 아내는 망자를 직접 대하지 않고서도 극락왕생 염원의 마음은 늘 저와 같았습니다.”
염불봉사 외에도 조계사 문수법회장으로서 수많은 모임을 이끌고 있는 홍 거사의 든든한 지원자는 역시 아내 전봉순(64) 보살이다. 전 보살은 그의 보살행을 말없이 지원하며 참선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집 근처 용화사 시민선방에서 안거를 맞이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기복신앙에 치우쳐 제 자리를 찾지 못했을 때 홍 거사는 전 보살의 손을 잡고 선방을 찾았고, 전 보살은 이제 부처님 법에 의지한 본격적인 수행의 궤도에 안착했다.
부부가 뿌린 불심의 씨앗은 딸 홍경아(36) 씨의 가슴에서도 싹을 틔웠다. 오랜 기간 불교를 가슴에 담지 못하던 경아 씨는 최근 해인사에서 3000배를 마쳤다.
피아노를 전공한 이점을 살려 수련회 때 찬불가 반주를 맡으며 불교음악 연구도 시작하게 됐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지만, 우리 가족은 부처님 법으로 통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아침예불 시간에 손을 하나로 모은 불심가족의 수행은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