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5 (음)
> 종합
"은산철벽(銀山鐵壁)의 신심으로 정진하라"
태고총림 선암사, 갑신년 동안거 결제법어 발표

불기 2548년 동안거 결제일(11월 26일)을 맞아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 지허 스님이 동안거 결제 법어를 발표했다.

지허 스님은 "서래일곡조(西來一曲調)라도 고취화자무(高吹和者無)로구나. 서쪽에서 온 하나의 노래 높게 불러 봐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법어를 내렸다.

다음은 법어 전문.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 지허 스님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한번 친 후)

대량왕도 불식(對粱王道 不識)하니
호개서래 곡조(好箇西來 曲調)로다
거세인화 부득(擧世人和 不得)이니
청로고범 청파로(靑蘆故泛 淸波路)로구나

양무제를 만나서 모른다했거니
서쪽에서 온 좋은 곡조로구나
세상 사람과 화합하지 않았으니
맑은 파도 길에 푸른 갈대로 떴구나

이 노래는 갈대타고 물위에 떠가는 달마대사를 보고 우리 태고 화상 어른이 한 곡조 부르신 노래입니다.
옛 부터 누구나 조사관을 타파한 선지식이라면 마땅히 잘 부르든 못 부르든 도의 경계를 보고 한 곡조 부를 줄 알아야 할 일을 다 마친 격외장부(格外丈夫)라 할 것입니다.
이 곡조는 할 일 마친 태고 조사가 지은 곡조입니다.

그러나 처음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분은 석가여래였습니다.
즉 교외별전으로 삼처전심(三處傳心)한 것을 서건사칠(西乾四七)하여 달마대사에 이르고 다시 육조에서 임제 스님을 거쳐 태고 조사에게로 전해진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이름이 서래곡(西來曲)이라 하는 것입니다.

달마대사는 인도에만 유행하고 있는 이 노래를 반야다라라는 스승의 말을 듣고 홀홀단신으로 갈대 한 줄기를 타고 중국에 전하여주려고 왔습니다.
오자마자 양나라 무제 임금이 찾아왔습니다.
무제 임금은 인도에서 왔다는 달마스님을 향해 묻습니다.

“어떤 것이 최고의 진리(第一句)냐?”고 물었습니다.
“텅 비어있으면 성스러운 것이 없다(廓然無聖).”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무제 임금은 “지금 나를 대면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냐?”라고 또 물었습니다.
달마대사는 “모른다(不識).”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로 달마대사는 위나라로 떠나 소림굴에서 9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면벽 9년 뒤에 혜가대사를 만나 서래곡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총령을 넘어 작대기 하나에 짚신을 달고 다시 인도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가 바로 우리 불교집안의 틀림없는 심즉시불(心則是佛), 비심비불(非心非佛)의 풍속입니다.
이를 전승가풍(傳承家風)이라고도 합니다.

승가나 속가나 가풍이 끊어진 집안은 망한 집안이라고 합니다.
절대로 집안을 망하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의 결제도 가풍 하나요, 생사해탈도 가풍의 하나이며, 견성성불도 가풍의 하나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풍은 이름만 가풍이 아니고 그 실행이 있어야하고, 그 실행은 억겁을 지난다 해도 그 실질이 보여 져야 살아있는 가풍이라 할 것입니다.
죽은 가풍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흉내만 내는 가풍과 입으로만 떠벌리는 가풍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삼천년 전에 이미 세존이 연꽃을 들여 보였고 가섭존자가 파안미소를 보였습니다.
이로부터 1700공안이 나왔고 제불조사의 게송이 나와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하였습니다. 오로지 용맹정진하고 또 용맹정진해서 오매불망만 참구해야 실참실구입니다.

여기에서 달마대사의 “모른다(不識).”는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 참구해야 합니다.
“모른다(不識).”를 알았다면 무엇을 알았는지 내보여야 합니다.

서래일곡조(西來一曲調)라도
고취화자무(高吹和者無)로구나

서쪽에서 온 하나의 노래
높게 불러 봐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구나.

“모른다(不識).”
참으로 알라야 알 수 없고 모를라야 모를 수 없는 도리입니다.
티끌하나 더 할 수 없고 티끌하나 뺄 수 없는 도리입니다.
이 도리는 혁혁분명(赫赫分明)하므로 만고불변해서 백척의 간지대 위에 올라 한발 내딛어 살아나야만 비로소 이 도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서래조사의(西來祖師意)가 바로 불식(不識)입니다.
불식(不識)이 서래조사의(西來祖師意)입니다.
설혹 서래조사의가 불식이라 해도 삼십방망이요.
불식이 아니라고 해도 삼십방망이입니다.
서래조사의가 전정백수자(前庭栢樹子)입니다.
전정백수자가 서래조사의입니다.
여기에서 은산철벽(銀山鐵壁)의 의단을 내야 합니다.
이 의단에서 줄기차고 큰 신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살아있어도 산 줄 모르고 죽어도 죽은 줄 모르도록 의심을 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생사가 무슨 부질없는 물건이겠는가 말입니다.
고요한 것도 탐내지 말고 시끄러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앞을 향해 곧장 내달려서 벗어나야 한 곡조 부를 수 있는 경계가 나옵니다.
내가 법상에 오르자마자 부른 태고 조사의 노래 중에 달마대사가 이 세상 누구와도 화합하지 못했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양 무제에게 모른다고 한 도리는 오도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도리입니다. 아무리 친한 부자간이라도 통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오직 명안종사(明眼宗師)가 명안종사에게만 이어지는 이 도리가 눈 먼 장님들에게 어찌 보일 수 있겠습니까?

지혜의 눈을 뜨고 숙세정업(宿世淨業)의 귀를 열어야 화합이 됩니다.
눈뜨고 귀 열기 전에는 이 도리에 화합은 없습니다.
양 무제에게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 하려고 “모른다.“의 도를 일렀습니다마는 알아듣지를 못했기에 화합을 못했습니다.
알아들어야 화합이 있습니다.
우리 조사 스님들은 화합을 했기에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이 꽃을 드니 가섭이 파안미소를 해서 화합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자리를 나누었고 곽(郭) 밖으로 두 발을 내밀었습니다.
이 화합이 제대조사에게 구구절절이 전해져서 이어졌습니다.
우리 불가의 사부대중의 화합은 개공성불도입니다.
일체중생이 불성을 지녔으니 모두 부처를 이루는 길로 가야 화합대중이 되는 것입니다.
달마대사와 양 무제가 화합하는 길은 오직 달마대사가 모른다 할 때 몰라서 모른다도 아니요 알아도 모른다도 아닌 이 모른다의 도리에 언어도단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한 대의단을 냈어야 달마대사와의 和合이 가능했습니다.
양 무제는 불사는 많이 했을지라도 의단을 낼 줄 모르니 눈먼 장님이요 귀머거리입니다.

양 무제는 눈을 뜨고 귀를 열어 깨칠 줄 알아야 했습니다.
벽창호는 아무 소용이 없는 집안이 우리집안입니다.
많은 불사로 온 천상천하를 다 도배 한다 해도 생사해탈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생사거래 전미맹(生死去來 轉迷盲)고
불식심중 무가보(不識心中 無價寶)로다

나고 죽고 오고 가는 것 돌고 돌아도 눈멀고 어두운데
모른다 만이 마음 가운데 값을 칠 수 없는 보배일세.

한 30 여년 전일입니다.
몇 년에 걸쳐 몇 곳의 선원을 다니다가 본사인 선암사에 해제가 지나고 돌아와 지내는데 아직 겨울이라 쓸쓸한 도량을 포행하다보니 눈물이 나도록 그리운 분이 생각났습니다.

내 발심을 촉발시켜 처음으로 공부를 지어가게 하시고 해제 때마다 찾아뵈면 내 공부를 점검하여 주시던 선곡(禪谷) 큰스님이었습니다.
그날도 선곡 스님을 그리다가 무심결에 산문을 나왔습니다만 막상 정한 곳도 없이 무작정 다다른 곳이 어느 방장 스님 처소였습니다.

지금은 그 방장 스님마저도 열반에 드신지 십수년입니다.
스님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스님은 저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남쪽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실 돌아다니다 왔으니 뚜렷하게 어디서 왔다고 말씀드릴 수 없어서 그냥 남쪽에서 왔다고 대답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나를 넌지시 건너다보시더니 “수좌는 남쪽에서 왔다고 했는데 조사가 서쪽에서 왔다는 뜻을 아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죄송합니다마는 스님께서 물어주시면 대답해 올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 祖師西來意)닛고?”라 하셨습니다.
나는 언하에 “목마상금제(木馬上金梯)입니다.”했더니
스님께서는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바로 “황금사다리를 나무말이 오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아니다.”하셨습니다.
나는 “스님께서 다시 물어주시면 이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여하시 조사서래의닛고?” 하셨습니다
나는 방장을 한바퀴 돌아 방장실 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곳 뒤따라 나와 마루에 서서 “차 한잔하고 가라.” 하시더니 시자를 불러 큰 소리로 “차 내오거라.”하셨습니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차를 마신 후 공손하게 다시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방장 스님의 조사서래의는 어떠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바로 “목마상금제로다.”하셨습니다.

나는 “황금사다리를 나무말이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하니
스님께서 큰 소리로 웃으시며 “황금사다리가 참으로 좋구나!”하셨습니다.
나는 “이 황금사다리는 조계산에서 나왔지만 태초이래 무수한 나무말이 오르고도 다 쓰지 못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스님은 선 듯 내 손을 만지시면서 “스승이 있었던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가만히 웃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스님은 나에게 하룻밤 쉬어가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스님과 나는 나란히 누어 밤늦게까지 선조사 스님들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뒷날 아침에 떠나려는 나의 기색을 보고 “수좌의 살림살이가 더 있느냐?”고 하시기에 나는 방 어귀에 있는 지필묵으로 즉석에서 송구 하나를 써 올리고 하직했습니다.

련마공부도(鍊磨工夫到)하니
거래무루선(去來無漏禪)이로다
산공운자재(山空雲自在)하니
천청월고원(天淸月孤圓)이로구나

갈고 닦아 공부에 이르니
가고 오는 것이 무루선이네
산이 비어있으니 구름이 스스로 머물고
하늘이 맑으니 달이 홀로 둥글구나

(하좌하다)
박봉영 기자 | bypark@buddhapia.com
2004-11-24 오후 4:53: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5. 9.1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