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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자교수, “개인의 한 길이 역사를 이룬다”
<오늘이 역사다>낸 정옥자 서울대 교수
<오늘이 역사다>를 펴낸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사진=고영배 기자
‘개인과 역사’, 과연 소통이 가능할까? 개인의 감정과 경험을 철저히 배제하는 역사기술에 있어서 말이다. 하지만 정옥자 교수(서울대 국사학과ㆍ62)가 펴낸 <오늘이 역사다>는 이런 통념을 처음부터 깬다. 아예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피난길 청평호수에서 세 여동생과 물에 몸을 던지는 광경을 바라봐야 했던 비극적인 가족사마저 정 교수는 자전적인 문체로 책 전반부에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개인의 한 길이 역사를 이룬다”고 단언한다.

정 교수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 역사는 개개인 삶의 경험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그의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치열하게 ‘자기화’해 역사의 창(窓)을 열어야 한다는 역사학자로서의 소신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이 책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빼앗긴 가족, 여성이란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고 학문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사연 등 개인사가 그대로 ‘오늘의 역사’로 이어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목민심서를 읽어나요’ ‘사직상소가 그립다’ 등의 글들에서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정교수의 비판의식이 서려있다.

11월 26일, 파란만장한 개인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들고 서울대 인문대 7동 그의 연구실에서 정교수를 만났다.


▲이 책의 특징은 개인사를 다룬 점입니다. 과연 개인사와 역사의 소통이 가능할까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토지>의 서희처럼 살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서희는 토지를 찾는 것으로 명예를 되찾았지만, 난 열심히 공부해서 명예회복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인생에서 삶의 많은 경험들이 내 학문에 온전히 살아남았다고 자부합니다. 내 문제의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지요. 내 삶의 고난이 역사연구에 큰 도움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 개인사를 포함한 것은 개인의 역사를 뛰어넘어 한 역사가로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의 삶은 역사연구에 자양분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사와 역사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개인의 한 길이 역사를 이룬다고 말하는 책 <오늘이 역사다>
▲그간 꾸준히 역사에서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책에 담았습니까?

“지금은 투쟁의 시대입니다. 한 마디로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는 소리지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껏 이런 대립적인 세계관, 투쟁의 인간관계를 극복하는 방향 등을 항상 서구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그런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심지어 국학을 하는 학자들조차도 그랬습니다. 사실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즉 현재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그런 해법들을 우리 전통에서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 전통의 대한 깊은 이해와 재조명, 그것들을 재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 전통문화와 오늘날을 접맥시켜서 우리 전통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발간하게 됐습니다.”

▲‘오늘이 역사다’란 책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아마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개념을 대중적으로 풀어 쓴 것 같은데, 교수님의 학문적 화두가 되겠네요?

“우선, 법고창신은 오늘의 문제 해결을 역사에서 실마리를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지요. 18세기 연암 박지원의 말입니다. 예를 들어 법고창신의 개념을 교육의 문제에 적용해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교육은 한물간 서구교육 제도의 ‘재탕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우리전통에서 교육 아이템을 찾지 않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 정조에게서 학문적ㆍ인간적 동질감을 확인했는데, 계기가 무엇입니까?

“어려서 부친과 여동생들을 한국전쟁 중에 세상을 떠나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큰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나에게 용기라는 것을 불어 일으켜주었습니다. 웬만한 두려움에도 끄덕 없게 만들어 주었지요. 내가 늦은 나이에 공부의 열정을 다시 불태우게 했던 힘이 바로 어린 시절의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선의 정조와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학자군주로 평생을 공부했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떠나보내면서도 학문으로 그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정조에게서 인간적ㆍ학문적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요즘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총성 없는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중국이 근본적으로 잘못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맹목적인 민족이기주의 발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또 한국의 극우 민족주의자들도 문제가 있습니다. 민족주의와 애국심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잃고 중국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동북공정에 맞서 옛 땅 간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논리까지 펼치고 있으니, 지금은 양국이 극단으로 치닿고 있는 형국입니다. 필설로 하는 논리싸움을 해야 합니다. 역사를 보는 눈입니다. 제가 가진 역사관은 ‘평화사관’입니다. 모든 존재가 살아가는 원리가 평화입니다. 얼마나 평화시대를 구축했는지 마음의 안정을 얻고 평화로웠는지가 이 사관의 인식 틀입니다. 모든 관계가 투쟁관계로 해석된 것이 식민지사관 또는 제국주의적 사관을 탈피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년이 2년 남았습니다. 앞으로는 쉬운 글쓰기를 통해 일반 대중과 가깝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역사소설도 써볼 생각입니다. 학문의 길은 끝이 없다고 하지요. 정조가 ‘일모도원(日慕道遠)’라 말했습니다. ‘해는 저무는 데 갈 길이 멀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학문에 정진할 생각입니다.”
김철우 | in-gan@buddhapia.com |
2004-11-30 오후 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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