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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소운 스님은 경북 문경의 한 산사에서 화두 참구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일본 도쿄(東京)대 석사학위, 한국의 비구니 스님으로는 최초로 미국 하버드대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자전적 에세이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 한 권을 속세에 남겨둔 채.
11월 20일 서울 성북동 약사암에서 안거 준비에 한창인 소운 스님을 만났다. 최근 발간된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 때문에 몇몇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평소 약사암을 나서는 일이 별로 없기에 석 달간의 부재가 조금은 낯설 법도 하다.
“공부에만 매진해 왔던 내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썼어요. 타인의 시선으로 제 삶을 되돌아보고 그걸 글로 옮기다보니 내 안에 쌓여있던 쓸데없는 짐을 버리는 기분이 들더군요.”
이번 책에는 13년간 배움의 길을 걸어 온 스님의 ‘경험담’과 ‘수행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하버드대 입학 성공기’나 ‘공부 잘 하는 법’을 다룬 여타 실용서 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스스로를 ‘학승(學僧)’이라 부르는 스님이 배움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유학 생활 동안 만났던 사람들,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염불수행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지듯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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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학생활이 어렵지 않았는냐”는 질문에 스님은 도리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왜 힘드냐”는 것이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혹은 출세를 하기 위해 공부를 했으면 힘들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가장 원해서 선택한 것이 공부였기 때문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그 때가 참 안쓰럽고 구차한 시기지만요.(웃음)”
그렇다면 스님이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는 누구일까?
“처음에는 형이상학적이고 경배의 대상인, 나와 동떨어진 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유학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면서 평상심을 벗어나서는 부처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언제나 즐거운 얼굴로 커피를 따라주는 커피하우스의 흑인 아저씨, 매일 마주치는 기숙사 청소부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부처님의 미소를 보게 됐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부처를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준 유학을 마치고 2년 전 한국으로 돌아 온 스님은 약사암에 기거하며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유학을 마쳤다고 수행이 끝난 건 아닙니다. 어디를 가든 배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배움이 ‘나’를 덮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끝없이 고민해야겠지요. 안거에 드는 것도 바로 그런 고민의 연장입니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소화’하는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소운 스님 지음, 도솔, 9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