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직무유기. 한마디로 현재 그리고 과거의 군포교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필자가 1999년 전방에 초임 군법사로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처음부터 각 연대의 지휘관들은 노골적으로 목사가 부임해주기를 바랐고, 법사가 부임하는 부대의 지휘관을 위로(?)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법사를 참모로서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1년의 기간동안 필자는 이러한 법사에 대한 야전 지휘관들의 일반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어려운 여건에서 법당불사를 완료했다. 그러나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쯤, 우려했던 것은 현실화 되기 시작했다.
개신교 신자인 지휘관은 군종참모인 목사와 협의해, 후임 군종장교를 목사로 할 것을 협의하고 있었다. 이에 군승단 회의시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다른 부대도 유사한 상황일 것이므로 전군 차원의 대응 방안을 모색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당시 필자의 상급부대 법사는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다른 상위 계급의 법사들의 인식부족으로 인해 이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지휘관과 당시 군종참모인 목사를 설득해 무사히 후임 법사에게 업무를 인계할 수 있었다. 이때 오히려 합리적 성향의 목사가 필자의 주장을 상당부분 이해해 준 것이 도움이 되었다. 포교의 적은 항상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사례의 경우처럼, 법사 개인의 자질과 무능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법사가 군조직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있다. 사단법사는 3년 이상의 군복무 경력에도 불구하고, 당해 사단에 부임하는 군종장교의 인사가 어떤 행정절차를 거쳐 확정되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하급 부대의 사정에 대한 정보가 부재했다. 이는 자신이 그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 즉 자신의 임무가 무엇이고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가를 모른다는 것이다.
군법사는 장교로서의 활동을 당해 지휘관에게 평가받지만 승려로서의 활동은 객관적으로 그 공과를 평가받을 길이 없다. 이것은 상위 계급 법사와의 개인적 친분 등이 노력보다 현실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이는 부패와 무능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법사가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한 군포교의 질적 향상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군불교는 목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상담분야의 전문가와 조직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행정적 추진력과 판단력을 겸비한 법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것은 유능한 인적 자원이 군법사를 기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조치해야 하는 선결과제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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