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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당 정일 대종사의 법구에 불길이 치솟았다. 다비장을 둘러싼 사부대중의 염불소리가 높아지고 곳곳에서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순식간에 새빨간 불길이 하얀 연꽃으로 장식됐던 상여를 삼켰다. 불길 속으로 흔적 없이 스러져간 상여처럼 스님의 육신은 그렇게 사바세계를 떠나가고 있었다.
늦가을 빛으로 물든 금정산의 하늘은 높았고, 햇살은 따스했다. 석주 스님이 일생동안 중생들에게 베풀었던 자비행처럼 햇살은 대중들의 머리위로, 등 뒤로 내리쬐고 있었다.
영결식이 끝나고 석주 대종사의 법구 이운이 시작된 것은 12시 30분경. 범어사 일주문 앞에서 노재를 지내고 인로왕번을 앞세운 장의행렬이 시작됐다. 일주문 앞을 출발해 약 1km 거리의 다비장까지 명정, 오방번, 불교기, 무상계, 만장,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신도 등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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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이어지는 염불소리가 금정산을 타고 올랐다. 스님의 원적을 아쉬워하는 대중들의 긴 행렬이 다비장을 향하는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200m정도의 산길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다비장엔 범어사 전통 방식의 다비가 준비돼 있었다.
사방으로 빙 둘러 돌이 쌓여져 있고 그 안쪽 바닥에 숯을 깔아 놓았다. 일생동안 종횡무진하며 중생 교화의 원력이 수미산 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었던 스님. 석주 스님의 법구가 한 평 남짓한 다비대 위에 올려지자 사방으로 숯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법구 위에까지 숯이 쌓이고 흰 연꽃으로 장식된 상여가 올려지자 다비 준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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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10분도 지나기 전, 타오르던 불길이 자고 법구 위를 덮었던 까만 숯이 드러났다. 숯의 열기를 가두기 위해 물이 뿌려진 멍석이 덮이자 하얀 연기가 다비장을 뒤 덮었다. 대중을 어루만지는 큰 스승의 마지막 손길처럼 사람들의 머리를 어깨를 어루만지며 자취 없이 사라졌다.
구십육 년의 세월 뒤돌아보니
마치 왕자가 구걸 다니듯 했네
오늘 아침 무거운 짐 내던지니
옛 모습 오롯이 본 고향이구나.
스님의 게송처럼, 스님은 육신의 짐을 벗고 본래면목으로 돌아갔다. 석주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 금정산의 푸르던 잎도 온 곳으로 돌아가는 소식을 전하듯 발밑에서 바스락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