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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아파트의 직선 문화에 비해 경주의 기와집 골목은 인간적이고 정겹다. 집집마다 뜰엔 맷돌이며 골동 냄새가 나는 물확 같은 것이 놓여 있고, 석류니 무화과니 과수들이 운치있게 자라 있다. 처마마다 달려 있는 메주들과 골목에 널려 있는 빨간 고추는 또 얼마나 예스러운지.”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감탄해마지 않았던 황오동 골목이 포클레인의 무력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원형을 잃고 고도 신라의 정신까지 퇴색되어가는 경주의 모습에 마치 자신이 병들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한다.
“경주는 짓고 세울 것이 아니라 수도승처럼 비우고 비워야 할 도시가 아닐까. 1500년 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원형을 발견하고 달팽이집 같은 일상에서 비켜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맞도록, 그것이 민족의 고향으로서 경주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수십년째 경주에 살아 온 화가 김호연(동국대미술학부 서양화과) 교수의 풍경 그림도 책에 보태져 사색의 향기를 더한다.
□ <강석경의 경주산책>(강석경 지음, 열림원, 9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