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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 스님은 추도사에서 “열반송(涅槃頌을) 묻는 시자에게 ‘따로 말이 필요 있나. 이미 부처님께서 열반송으로 말씀하셨다’라고 대변(代辨)하심은 불조혜명(佛祖慧命)을 이어 받아오신 삶의 결정체(結晶體)요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심지(心地)를 보이심입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큰스님의 업적은 극천(極天)하고 광대(廣大)하여 후학들이 보기에 스님께서는 가히 우리 조계종단의 큰 기둥이셨으며 주인이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며 “큰스님께서 우리 종단사(宗團史)에 비추이신 대업(大業)은 후세에 길이 빛날 것이지만 그 같은 업적(業績)보다 더 큰스님을 추앙하고 존경하는 것은 수행의 기풍(氣風)으로 근엄(謹嚴)하시면서도 원만(圓滿)하신 자비행(慈悲行)을 실천하신 것입니다”라며 원적을 애도했다.
다음은 추도사 전문.
추도사
석주당 정일(昔珠堂 正一) 큰스님!
그리도 반짝이던 북두성(北斗星)이 간밤에 빛을 잃고 사라지고 오늘 이 아침에는 금정산(金井山)이 검게 물들어 제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삼라대지(森羅大地)가 허희탄식(歔欷歎息)으로 일조(日照)를 맞이했습니다.
생사거래(生死去來)가 불이(不二)하고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며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法則)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릇 생(生)하는 것은 멸(滅)하는 것이 실상(實相)입니다.
오늘 큰스님께서 팔십 한 해나 굴리시던 옛 구슬을 멀리 동해(東海)에 던지시고 원적(圓寂)을 보이신 것은 부처님이나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참모습을 시현(示顯)하신 것입니다.
열반송(涅槃頌을) 묻는 시자에게 “따로 말이 필요 있나. 이미 부처님께서 열반송으로 말씀하셨다”라고 대변(代辨)하심은 불조혜명(佛祖慧命)을 이어 받아오신 삶의 결정체(結晶體)요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심지(心地)를 보이심입니다.
하오나 95세의 세납(歲臘)과 81세의 법랍(法臘)만큼 많은 세월 속에서 자애(慈愛)로우신 덕화(德化)를 입은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큰스님을 영결(永訣)하려고 함에 아득히 깊은 가슴 저 밑에서 솟구치는 아쉬움이 유인(幽欭)으로 몸부림치고 동래포구(東萊浦口)는 눈물로 넘치고 있습니다.
석주당 정일 큰스님!
큰스님께서는 일찍이 15세의 어린 나이에 당대(當代)의 선지식(善知識)이시며, 서울의 선객(禪客)의 중심도량(中心道場)인 선학원(禪學院)을 창건(創建)하셨던 남전광언(南泉光彦) 대화상(大和尙)을 은사(恩師)로 출가(出家)하신 이래 당시(當時)의 대선승(大禪僧)들을 모시고 구도일로(求道一路)를 걸어오셨습니다.
21세에 범어사 불교강원(佛敎講院) 대교과(大敎科)를 이수(履修)하신 이후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마하연,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로써 20대에 선교양문(禪敎兩門)을 두루 섭렵하시고, 광복(光復) 이후 어지럽고 혼탁했던 한국불교를 올바른 반석 위에 올려놓으시기 위해 전력을 쏟으셨습니다.
46년 왜색불교(倭色佛敎)의 퇴치와 새로운 한국불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불교혁신운동(佛敎革新運動)을 주도(主導)하신 것을 필두(筆頭)로 불교정화운동(佛敎淨化運動), 그리고 불교정화사태수습(佛敎淨化事態收拾)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非常對策委員會)의 발족(發足) 등 실로 한국불교의 기초(基礎)를 세우시는 일에 선봉장(先鋒將)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교가 어느 정도 안정(安定)의 궤도(軌道)를 이루었을 때 미래 한국불교의 기둥이 될 청소년(靑少年)과 어린이의 선도(善導)와 교화(敎化)가 급선무(急先務)라고 생각하셨던 스님은 주저 없이 이 일에 앞장서셨고, 한글세대를 예측하시고 팔만대장경의 우리말 사업에 역점을 두시어 운허(耘虛) 스님 등과 더불어 역경사업(譯經事業)에 진력(盡力)하셨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큰스님의 업적은 극천(極天)하고 광대(廣大)하여 후학들이 보기에 스님께서는 가히 우리 조계종단의 큰 기둥이셨으며 주인이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스님께서 우리 종단사(宗團史)에 비추이신 대업(大業)은 후세에 길이 빛날 것이지만 그 같은 업적(業績)보다 더 큰스님을 추앙하고 존경하는 것은 수행의 기풍(氣風)으로 근엄(謹嚴)하시면서도 원만(圓滿)하신 자비행(慈悲行)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특히 말년에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의 차별(差別)을 두지 않고 온양 온천에 노인복지시설을 갖추어 회향하려 하셨음은 불타행(佛陀行)을 보이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큰스님께서 사바의 인연(因緣)을 뒤로 하고 원통광명법계(圓通光明法界)로 떠나시려 하십니다. 아직도 투생(偸生)하는 중생들은 갈 바를 몰라 제자리에 서 있지도 못합니다. 마지막 자비를 베푸시어 오유지족(吾唯知足)의 모습을 보여주소서
운래기접금정장(雲來氣接金井長) 하니
월출한통설백산(月出寒通雪白山) 이라
구름기운 내려와 금정산에 이어지고
차가운 달빛은 솟아 흰 설산에 통했도다
석주당 정일 큰스님!
다시 한번 사바의 중생을 어여삐 여기사 여여(如如)한 모습으로 다시금 우리 곁에 오시옵소서.
삼가 각령 전에 향 사루옵고 정례하옵나이다.
불기 2548년 11월 18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