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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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목적'
불자로서 인간 본질에 대한 의문은 늘 필자의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은 보다 세부적인 의문들은 수반된다. 물론 존재 자체의 본질에 관한 의문은 늘 그러한 질문들에 전제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때론 깜냥의 이해를 대단한 깨달음인양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행복을 수치화한다는 그 기발한 벤담의 발상을 접했을 때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리주의가 주는 매력은 그 구성요소로서의 ‘복지주의’ 뿐, 별로 호감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어찌 보면 ‘효용’이라는 말도 참 재미있다. 예를 들어, 소위 명품상표를 몸에 휘감은 누군가가 그것을 뽐내려고 해도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다.
자유로의발전 책 표지
왜냐하면 분명 그 상표가 명품인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은 수치화하기 힘든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늘 무언가 과학적 분석에는 그 분석의 대상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센은 달랐다. 필자가 소개하려는 책,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가 베어 나오는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은 1998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의 경제사상과 분석을 다루고 있다.

센은 이 책에서 미국의 흑인 소득은 인도 케랄라 주 사람들보다 몇 배가 높은데도, 수명은 케랄라 주 사람들이 높다는 매력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삶에서 무언가 산술적 수치보다 돈 자체의 양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또한 자유주의적 정치체제가 정착한 나라는 아무리 가난해도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경험적 근거도 제시한다.

인도 벵갈 출신인 저자는 인도의 켈거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유학한다. 저자가 인도인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지만, 무언가 노스(Douglas C. North)나 월러스틴(I. Wallerstein) 같은 서구의 정치경제학 이론가들과는 다른 풍모를 보여준다.

이처럼 기존의 ‘효용’, ‘결과’ 등의 용어로 얼룩진 경제분석이 아닌 - 노스와 월러스틴이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 ‘자유’라는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가치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임을 그는 실증해 나간다. 필자는 그의 분석을 통해 존 롤즈와 로버트 노직 등의 학문적 논의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정치철학적 논의의 지형을 파악하는데도 커다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노벨상 위원회는 ‘어떻게 그가 경제문제의 윤리적 차원을 회복하고 차세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열어 주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라고 하였는데, 이 표현이 너무나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교평론>이 최근 현대사회의 문제들, 특히 자본주의의 병폐와 관련한 불교적 대안에 대해 다룬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논의들에 대해 상당한 실망을 하게 됐는데, 사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롤즈를 잔뜩 인용한 뒤에 <아함경> 몇 구절 인용하고, “자 이렇듯 불교와 유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적 대안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불교와 유사하든 아니든 그 대가의 논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필자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사회에 관한 고민과 사유 속에 부처님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것이 진정한 불교적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센의 책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점을 던진다. 그가 불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사유 방식이 바로 시사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토대로 하는 그의 분석이 갖는 가치는 바로 그 사유방식에 있으며, 그것이 다른 서구 학자와 다른 차이를 갖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사회적, 정치경제학적 문제와 논의들은 논의대로 별개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르침대로 별개라는 분리적 사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반성을 해본다. 또한 ‘이러이러한 서구의 대가와 불교가 이러한 점에서 비슷하다’라는 식의 대안 찾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센의 책은 차세대 연구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수많은 현재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각 속에 부처님 가르침이 어떻게 담겨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현대문제에 불교를 맥락 없이 덧칠하거나 또는 무조건 불교를 포교하면 된다는 식의 기독교적 물량주의식 접근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사유 자체를 불교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것이 대안을 찾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센은 그 사유방식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주저 없이 이 책을 우리 불자들께 권하고 싶다.

‘자유로서의 발전’
센 아미타아 지음 / 1만8천원
세종연구원 펴냄
이정훈(방송통신대학 법학과 강사) |
2004-12-14 오후 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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