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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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당 정일 대종사 영결식 준비 한창
이부영 의장, 정동채 문광부 장관 등 정ㆍ관계 조사
부산 범어사에 마련된 석주 스님의 분향소에는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석주 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범어사에서는 11월 18일 봉행될 영결식 준비가 한창이다.

지장암 뒤편에 마련된 범어사 다비장에는 범어사 전통 다비 방식인 돌로 된 다비장이 마련되고 있으며 영결식단 설치와 영결식에 사용될 만장이 준비되고 있다.

범어사 다비장은 나무나 장작을 사용하지 않고 숯을 사용한 방식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법구를 넣은 뒤 사방의 여유 공간에 숯을 넣어 다비하는 전통 방식이다. 이 다비는 범어사만의 독특한 다비 방식으로 쌓여진 돌 사이의 공간이 공기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분향소에는 전 조계종 포교원장 정련 스님이 다녀간 것을 비롯 오후 2시 20분경 중앙승가대학 학인 스님 200여명이 분향소를 찾아 스님의 원적을 애도했다. 중앙승가대학은 석주 스님의 도제 양성 원력이 깃든 곳이라 학인 스님들의 마음은 더욱 숙연했다.

또한 석주당 정일 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는 각계의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도형 스님과 문화관광부 정동채 장관, 열린우리당 이부영 당의장,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최고위원 등도 조사를 보내 애도했다.

다음은 각계 조사 전문.



조사

현대 불교의 대종장(大宗匠)이며
수행(修行)과 포교(布敎)의 귀감(龜鑑)이신
석주당(昔珠堂) 정일(正一) 대종사(大宗師)님

누구보다도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도인이셨던 큰 스님의 영정 앞에 서니 순수를 잃어 가는 오늘의 세태에서 어쩌면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남은 천진도인(天眞道人)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상천지가 어두워 보이기만 합니다.

일찍이 큰 스님께서는 선학원에서 남전 대선사(大禪師)를 은사로 득도하신 후, 상원사 한암 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시작해 금강산 마하연,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수선안거를 성만하셨습니다.

불국사 주지와 선학원 이사장을 지내시며 이판(理判)의 선기(禪機)를 보이셨으며, 은해사 주지,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하시며 이사(理事)의 무애(無碍)함을 또한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큰 스님께서는 이사(理事)를 달관하고 수처작주(隨處作主)의 광활한 덕목을 체득한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이시어 저희에게 본분종사(本分宗師)의 정도(正道)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하셨던 큰 스님께서 홀연히 생사의 경계를 넘어가시니 저희들은 큰 스님의 뜻은 알겠으나, 길을 바로 가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그동안 저희들은 대종사님의 지혜(智慧)가 계시기에 어둠 속에 등불을 볼 수 있었으며, 대종사님의 혜안(慧眼)이 계시기에 밝은 눈을 열어 모든 정도(正道)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오늘 큰 스님을 영결(永訣)하면서 천추(千秋)의 후회(後悔)가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왜 진작 큰 스님을 번듯한 회상(會上)으로 모셔서 더 많은 감로법문(甘露法門)을 청하지 못했던가 하는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사대(四大)는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五蘊) 또한 본래 공(空)한 것이기에, 저희들은 큰 스님의 환신(幻身)을 뵙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이만 붙들고자 합니다.

석주당(昔珠堂) 정일(正一) 큰 스님 이제 미혹(迷惑)을 끊고 보리(菩提)를 성취하셨으니, 대해탈(大解脫), 대자유(大自由)의 삶을 누리옵소서. 큰 스님의 덕화(德化)에 감읍(感泣)하며 향을 사르옵니다.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도형 분향




조사

존경하는 석주당 정일 대종사님!
대종사님께서 갑작스럽게도 세연을 다하시고 원적하셨다는 부음에 슬픈 마음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 나라 이 중생들을 위해서 베푸실 일들이 아직도 많은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그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만 느껴집니다.

대종사님께서는 1923년 출가하신 이래 평생을 청정수행으로 일관해 오시면서 조계종 총무원장과 포교원장, 중앙승가대학교 초대학장 등을 역임하시며 ‘현대 한국불교의 산증인’으로 활동해 오시면서도 역경불사와 불교정화, 사회복지, 어린이ㆍ청소년 포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1961년 현 동국역경원의 전신인 법보원을 설립해 역경불사에 활력을 불어 넣으셨으며, 1964년 동국역경원 설립 이후에는 운허 스님과 함께 한글 대장경 편찬사업에 착수, 318권의 ‘한글 대장경’을 완간하셨습니다.

또한 큰 스님께서는 불교혁신운동을 일으키시고, 왜색불교 청산을 위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셨으며,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정법 수호에 앞장서 오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며칠 전 제자들에게 “부처님 열반경이 임종게이거늘 어찌 임종게를 남기겠는가. 사리도 수습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이보다 더한 임종게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바세계 중생제도를 위해 마지막까지 큰 방편을 베푸신 대종사님의 은덕에 새삼 가슴을 여미게 됩니다.

대종사님의 크나큰 법덕을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마는 깊은 존경심과 한없는 그리움으로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공덕을 기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이제 큰스님께서 사바세계를 벗어나 대해탈, 대자유의 피안으로 가시기에 큰 슬픔을 뒤로한 채, 옷깃을 놓아드리오니 부디, 덕화의 향기는 우리 곁에 남아 중생을 제도해 주시오소서.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추모의 향을 사르며, 합장 올려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비옵니다.

불기2548년 11월 18일
문화관광부장관 정 동 채




조사

석주당 정일 대종사님!
아직도 사바세계에는 어둠이 걷히지 않았고, 중생들은 여전히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돌연하게 입적하시면 어이합니까?
이 땅의 불교와 민족의 앞길이 천리나 멀고, 중생의 제도와 불자 대중의 길이 만리나 먼데, 어찌하여 큰 스님마저 훨훨 떠나시려 합니까?
우리 불교의 산역사이시자 산증인이셨던 스님의 빈 자리가 너무나 크고, 그윽했던 스님의 눈길이 너무도 그리워 갈 길 잃은 대중들은 지금 막막하기만 합니다. 때 아닌 겨울 삭풍이 불어오고 세상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이젠 무엇보다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 시급하다”며 “불교의 화합정신이 그 첩경이 될 것”이라고 예지해 주셨던 스님께서 그 위업을 손수 마무리해 주시지 못하시니 아쉽기가 그지없을 뿐입니다.

큰 스님께서는 삼천리 금수강산이 일제에 침탈당했던 조국에 태어나 산문에 드신 후,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일제에 서 해방된 후에는 왜색불교 청산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을 벌이셔서 한국불교의 위상을 굳건히 하셨고,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 앞장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총무원장으로 재직하시면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온 국민이 축복할 수 있도록 공휴일로 지정되게 하셨고, 또한 평생동안 포교에 헌신하시며 높은 학덕과 불법의 오의로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특히 미욱한 우리 중생들이 부처님을 보다 가까이 모실 수 있도록 평생을 바쳐 역경불사에 힘쓰시며, 한글대장경을 완간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디 큰 스님의 거룩하셨던 행장을 감히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황망하고 그리운 마음이 사무쳐 잠시 반추해 봅니다.

석주 큰 스님!
스님께서 홀연히 이승을 떠나가시지만, 스님이 가시면서 남기신 뜻은 슬픔만이 아님을 우리는 또한 알게 됩니다.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사부대중들이 상생하고 화해하여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가르침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육신은 가시지만, 자오자중의 삶을 사셨던 큰스님의 가르침과 자비의 실천은 영원한 법신이 되어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평화와 안정과 번영이 깃드는 한반도를 만들고 큰스님의 유업인 남북통일을 기필코 이루어내겠습니다.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삼가 추모의 향을 사르며, 합장 올려 극락왕생을 비옵니다.

불기 2548년 11월 18일
열린우리당 당의장 이부영 분향





조사

석주당(昔珠堂) 정일(正一) 대종사님!

큰 스님께서는 죽음이란 본래 없는 것이며,
나고 죽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사라고 하셨지만,
혼탁한 세간의 정신적 등불이셨던 큰 스님을 이처럼 홀연히 떠나보내는
저희들의 황망함은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한 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혼돈과 갈등의 정점에서,
우리 시대의 커다란 사표(師表)이셨던 큰 스님을 여의는 우리들은
새삼 큰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되새겨보게 됩니다.
큰 스님께서는 “소나무 같은 지조로 자신을 깨끗이 하고,
물에 담긴 달처럼 마음을 비우라”(霜松潔操 水月虛襟) 하시면서
시류와 이해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탐심으로 인생을 망치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경책(警策)하셨습니다.
참으로 높으신 가르침에 부끄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큰 스님께서 가신 지금,
이제 어느 스승에게서 그처럼 지혜(智慧)와 덕망(德望)을 갖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불교계의 선맥(禪脈)을 이어오신 큰 스님께서는
일찍이 종단에 투신하시어 불교 혁신과 중흥에 앞장서셨습니다.
종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 앞장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평생 역경불사(譯經佛事)의 원력을 세우셔서
경전의 한글화에 힘쓰심으로써 이 땅의 불자들에게 진리의 빛을 열어 주셨고,
‘부처님 오신 날’을 지정하도록 하기도 하셨습니다.

석주 대종사님!

현대 한국불교의 ‘산 증인’이자 ‘정신적 지주’이셨던 큰 스님께서
팔십여 년의 수행참구(修行參究)를 통해 몸소 꽃피워 오신
상생화합(相生和合)와 원융무애(圓融無礙)의 가르침을
이제 저희가 소중히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일부가 아닌 모두를 위한 진정한 개혁을,
원칙과 경륜이 존중되는 안정과 번영의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겠습니다.

오늘 이처럼 저희들의 애절함 속에 큰 스님의 법구(法軀)는
한 줄기 연기로 화하지만,
큰 스님께서 남겨주신 지혜복덕(智慧福德)은
언제나 사부대중의 가슴 속에 불성(佛性)의 씨앗으로 움틀 것입니다.

큰 스님께서는 가셨지만
평소의 가르침은 점점 무게를 더하여 우리의 가슴 속을 파고듭니다.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추모의 향을 사르며,
부디 대자유를 누리시고, 큰 빛으로 다시 오시길 비옵니다.

불기 2548년 11월 18일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박 근 혜 분향"



천미희 기자 | gongsil@korea.com
2004-11-16 오후 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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