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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 스님은 또 “1980년 광주 민중들의 죽임을 목격하면서 인권이 마비되었을 적에 조국의 민주화에 나서는 정치인들에게 스님은 힘을 주셨다”며 “당시 종교인으로 불교에서는 석주 스님이, 기독교의 문익환 목사,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과 더불어 사회에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11월 6일 아침 온양에서 스님을 친견, 국가보안법 철폐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서명에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하니 이심전심으로 승낙해 주신 큰 은혜에 감회한다”며 “큰스님께서 원로들 서명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애도했다.
다음은 글 전문.
강석주 큰스님 열반에 눈물 흘리며
강석주 큰스님 열반에 눈물을 흘리며 금정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땅을 치는 몸입니다. 2004년 11월 14일 사바세계를 떠나셨다니 정말로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인간 세상에 왔다가 한 번은 떠나가야 하지만 또한 부처님 문하에 와서 수많은 일화를 남기고 가신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오실 적에는 나라가 일본에 침략을 당한 시점이고 나라를 빼앗긴 한탄스런 세상에 오시여 부처님의 법을 만났으니 귀중한 인연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 동진 출가하여 조선 민족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나갈 만해 스님과의 인연이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조선불교의 산 증인이시며 아직도 할일이 너무나 많은 조국 통일의 역사를 남겨두고 민족에 자주화, 민주화, 통일을 위하여 온몸으로 나투신 큰 어른 이셨습니다. 세상을 떠난다는 슬픈 비보를 접하고 한 동안 눈을 뜰 수가 없는 슬픔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순간 이었습니다. 강석주 큰 스님에 불교적인 사랑에 비하면 우리들은 너무나도 작은 일이지만 큰 가르침에 따르던 우리들의 일은 그래도 역사의 몸이 되었고 민족에 몸이 되었음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세상에 나투시어 96년간이란 세월 동안 민족과 불교를 지켜주신 큰 은혜에 우리는 어떤 몸으로 다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입니다.
우리 후학들에게 보여준 큰 가르침은 중생에게 보여준 미래에 오신 미륵보살의 실천행과 상불경보살의 자비심을 우리 중생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크게는 조국 사랑을 위하여 온몸으로 나투는 이들에게 힘을 주시었고 조국을 사랑하는 민족 열사들에게 자비심을 베풀어주신 큰 사랑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만해 스님의 후손이 있는 심우장에서 만해 스님께 젊은 후학들이 추모제를 올릴 적에 조국을 위하여 나투는 열사들의 정신을 우리 불교가 이어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하여 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우리는 조국의 자주화, 민주화, 통일을 위하여 온 몸으로,나선 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국 분단의 한을 안고 잘도 견디면서 이 나라의 불교를 위하여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장 소임을 3번이나 맞으시니 종단에 발전을 이룩하신 큰 스님이십니다. 1980년 이후에 승가의 교육을 이끌 승려들의 교육을 담당할 중앙승가대학을 설립하시고 학장으로 계시면서 학승들을 길러내는 것은 불교의 발전을 위함이며 부처님의 법을 전승할 씨앗이라고 말씀 하신 기억 새롭습니다. 그리하여 그 불씨가 이제는 수천을 헤아릴 수 없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1980년 광주 민중들의 죽임을 목격하면서 인권이 마비되었을 적에 조국의 민주화에 나서는 정치인들에게 큰 스님은 힘을 주시였고 오늘날에 정권이 교체되는 때를 맞이하는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그 성과는 사회의 원로 대열에 참여하였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인으로 불교에서는 강석주 큰 스님, 기독교에서는 문익환 목사, 천주교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더불어 사회에 참여하였고 정치인에 김대중, 김영삼 전직 대통령 원로의 이름을 올려주신 것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잊지 못합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하여 부당함을 비판하는 대열에 동참하신 것은 불교원로로써 그 소임을 다하신 것입니다. 중생이 아프기에 부처님 마음이 아파하신 그 뜻을 아시고 광주 민중들에 아픔을 함께하신 큰 뜻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이글을 쓰는 순간에 눈물이 온 몸을 적셔 서해, 동해, 남해 바다를 적시고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을 적시는 큰 눈물을 흘리는 몸이 되었습니다.
2004년 11월 6일 아침에 온양에서 큰 스님의 존안을 접하고 100수를 하신 것이라고 말하니 미소하신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하며 오늘날에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일에 불교스님들의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큰스님께서 서명에 동참하여주신 것을 말씀하니 이심전심으로 승낙하여 주신 큰 은혜에 감회하며 이제는 큰 스님께서 마지막 원로들의 서명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될 줄 몰랐습니다.
지난 시기에 항상 그랬듯이 사회의 원로들과 서명하신 그 공덕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며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그날에 큰 스님의 뜻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불교인으로 조국을 사랑하였고 불교 사회화, 민주화, 민중화에 온 몸으로 나투신 그 발자국을 잊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제자이신 아란 존자로부터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온 고구려 순도 화상과 백제 때 마라난타 화상과 가락국의 장육 화상과 신라에 오신 아도 화상과 민중 불교의 선구자인 원효 스님의 민중정신과 고려 때 대각국사와 혜심 스님의 정신과 조선시대 함허 스님과 보우 스님과 서산, 사명, 영규 스님의 정신을 어어 조선불교를 전승한 혜장 스님과 경허 스님, 용성 스님, 만공 스님, 만해 스님, 수월스님, 혜월 스님, 강석주 큰스님으로 이어지는 부처님의 인연을 이어 이 사바세계에서 인연을 다하시고 떠나가시니 후학들에게 다하시지 못한 일이란 이제 남겨두시고 편안히 가시옵소서.
존경하옵는 강석주 큰스님.
조국의 자주화, 민주화, 통일의 그날을 위하여 나투신 김구 선생님과 신채호 선생님의 추도식을 기억하여 이제 우리가 다할 것이니 우리에게 큰 힘을 주시기를 발원합니다. 금정산에 개화승 이동인 스님의 발자취를 밟으며 편안히 누워 상념에 들기를 바라며 열반락을 얻으신 큰 뜻을 부처님 전에 발원합니다. 이제 다하지 못한 불사란 후학들에게 물려주시고 안락에 안주하지 마시고 큰 미소를 보이소서. 엎드려 합장 하옵니다.
2004년 11월 15일
후학 진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