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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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스님의 스님이야기
혜학 스님(하)
혜학 스님은 법화경 법사다. 군법사로 있다보니 고민이 생겼다. 피가 펄펄 끓는 군인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지식적으로만 가르칠 수도 없고, 가만히 법당에 앉아 참선만 하게 할 수도 없다는 현실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들이 법당에 오는 이유는 부처님이 좋아서 오기도 하지만 휴식이 필요해서 오기도 하고, 지독한 외로움을 군중 속에서 달래려고 오기도 한다. 그리고 남들이 다 가는 그곳에 자기도 빠질 수 없어 오기도 하는데 법사가 원하는 만큼의 믿음으로 재충전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들에게 무엇인가 절실하게 다가가는 신념을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 화두가 되었다.

이리저리 궁리 끝에 평소 수지하는 <법화경>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은사인 덕암(德菴)스님의 영향도 컸다.
덕암 스님은 생전에 “나는 중으로서 해야할 염불, 간경, 참선, 범패, 금어’ 중에서 그림 그리는 금어를 빼놓고는 다 경지까지 가 보았다. 그런데 요즘 중들은 기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는 자들이 말은 왜 그렇게 많은지 몰라. 다 믿음이 부족한 탓이야. 믿음이야말로 도의 근본이며, 모든 공덕의 어머니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해” 하면서 <법화경>의 믿음과 <화엄경>의 믿음을 비교해 주시고는 했는데 혜학 스님에게는 법화의 믿음이 와 닿았다.

동국대 학부에서 <법화경> 믿음에 대한 교설을 중심으로 졸업논문을 쓰기도 한 스님은 대학원에 등록하고 <법화경>을 연구과제로 삼아 정진했다.
<법화경>이 대승불교의 출발점에서 법사신앙의 전형을 보여주고 또 현재의 대승불교권에서 하고 있는 신행활동의 거의 모든 것이 <법화경>에 나타나고 있음을 알았고, 불타의 중생을 위한 역용은 오로지 일체중생의 성불 하나로 귀결된다고 하는 일승(一乘)사상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유학을 꿈꾸었다. 쉽사리 기회가 오지 않았다. 부친인 영암 스님이 일찍 열반하신 관계로 망해사 운영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낡은 당우도 중수하는 등 시간을 많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군에서 전역한 뒤에도 많은 세월을 기도정진하며 보냈다.

그러던중 1994년 동국대 자매학교인 일본 대정대의 교환 유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해서 일본유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일본에 가서도 어려운 일은 많이 있었다. 많지 않은 학자금으로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 공부하는 것은 일제시대의 고학생만큼은 아니더라도 내핍을 필요충분조건으로 맞아야 했다.

마침 고국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한국 돈의 일본 돈에 대한 환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떨어졌다. 혜학은 먼저 대정대서 공부한 사형 혜일(慧日) 스님이 조성해 놓은 절에서 스스로의 믿음을 다지는 기도와 함께 교포들을 위해서 불공도 하고 법문도 해 주면서 유학생활을 꾸려나갔다. 공부하는 틈틈이 일본과 한국의 믿음에 관한 관념 그리고 현실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론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사찰 순례를 하였다.
순례한 사찰이 많아서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스님에게 제일 관심이 가는 사찰이 아무래도 <법화경>과 관련이 있는 사찰이라서 그런지 히에이산의 엔랴쿠지(比叡山 延曆寺)에 갔을 때 얻은 충격이랄까 느낌이 남달랐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삼매수행이라든가, 6년씩 진행하는 12년간의 농산행(籠山行)을 다 마친 이들이 일본 스님도 아주 드문데 우리나라의 법홍(法弘) 스님이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며 여불(如佛)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 등도 감동적이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일체 모든 중생을 부처님으로도 보고, 그들을 부처님의 입장에서 친아들로도 보는 하나의 연결된 구조로 느끼면서 일일이 절하면서 하심과 동체자비를 느끼는 수행법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정대 유학생활은 그렇게 지도교수와의 학문적 성취와 사찰순례 등으로 얻은 신앙적 성취의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석사과정을 마치면서 <법화경>의 성립사에 관한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고, 현재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혜학 스님은 <법화경>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습관을 몇 가지 들이게 되었다. 첫째,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자신은 <법화경>에 의한 믿음과 활동체계를 갖추겠다는 신념 속에서 아침 예불이 끝나면 우선 <법화경>을 1시간 정도 독송한 뒤에 다른 경전을 보거나 연구서적을 보는 기초수행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참고서를 먼저 보고 교과서는 나중에 보는 얄팍한 믿음을 갖지 않겠다는 기초적인 훈련이기도 하다.
둘째, 모든 이들이 부처님과 같은 깨달은 존재라는 주의에 입각하여 누구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사회복지를 강화하여야 한다고 스스로도 다짐하고 남들에게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현실에서 펼치기 위해 망해사 안에 불교사회복지연구소를 꾸려서 움직이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나의 친 아들인데 세상 자체가 많은 어려움이 있어 고통을 겪고 있으니 내가 바로 그를 구제할 적임자’라는 <법화경>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셋째, 그의 <법화경> 사랑은 정초기도 회향시에도 잘 나타난다. 대개 정초 기도를 회향하면서 신도들은 부적을 원하는 등 몸에 무엇인가를 지니고 싶어 하는데 망해사에서는 <법화경> 한 구절을 발췌하여 잘 인쇄한 종이를 나누어 주어서 신도들이 바른 믿음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그것이 참된 선교방편(善巧方便)이라고 굳게 믿는 혜학 스님이 나는 좋다.




2004-11-15 오후 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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