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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策問)-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임금이 직접 출제한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책문'

광해군의 묘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외척의 교만과 횡포를 제재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시고, 궁녀들이 규정에서 벗어나 인사에 개입하는 것을 금해 나랏일에 손대지 못하게 하십시오.”
1611년, 서른다섯 살 유생 임숙영이 조선의 군주 광해군에게 책문을 받는 현장. 광해군은 임진왜란 직후, 피폐해진 백성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임숙영은 왕에게 되묻는다.

“왜 스스로의 실책과 국가의 허물은 거론하지 않으십니까? 곧바로 남김없이 지적하겠습니다. 국정이 혼란스러운 원인은 모두 전하가 열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임숙영의 필적.
대찬 반문은 계속된다. 언로(言路)가 막혀있고, 인사가 엉터리라는 직언까지 토해낸다.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책문(策問). 대과(大科) 최종합격자 33명의 등수를 가리기 위해 임금이 직접 출제한 국가현안에 대해 응시자가 대책을 제시하는 시험인 책문은 이처럼 국가를 책임진 통치자의 현실적 고뇌와 예비 관료들의 치열함이 묻어 있다.

<책문-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조선조 500년사의 유명한 책문 15개를 뽑아 정리했다. 세종 중종 명종 선조 광해군 등 다섯 임금과 신숙주, 성삼문, 조광조 등 대과 합격자 13명이 주고받은 책문을 한글로 풀고,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해설을 곁들었다.
세종대왕의 진영.
때문에 이 책은 왕과 젊은 인재들의 국가경영책략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왕은 당대의 고질병을 질문을 통해 우회적으로 고백했고, 예비관료들은 ‘시대적 물음’에 대한 정치적 포부와 구상을 당차게 밝혔다.

우선 왕의 질문들에서는 처절한 위기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명종)’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세종)’ ‘정벌이냐 화친이냐(선조)’ 등에서 당시의 가장 절실했던 국가적 난제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젊은 인재들은 대놓고 임금의 폐부를 찌른다. 광해군이 1609년 증광문과에서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는 방법’을 묻자, 조위한(1567~1649)은 ‘겉만 번지르르한 10가지 시책들을 개혁하라’고 과감하게 대답한다. 중종 2년(1507년) 문과시험에서 권벌(1478~1548)의 대답은 흐지부지한 당시 개혁정치에 일침을 가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를 묻는 질문에 ‘시작을 잘 했으면 끝마무리도 잘 해야 한다’며 왕의 우유부단함을 꼬집었다.
성상문의 책문이 담긴 <매죽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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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끄는 책문도 있다. 사육신이 된 성삼문, 그와 반대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가담해 영의정까지 오른 신숙주, 정치적 다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당대 문장가 이석형. 이 셋은 젊은 시절 세종 임금 앞에서 책문을 함께 보았다.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을 묻는 세종의 책문에 세 명은 각기 다른 대책을 내놓는다. 성상문은 ‘마음이 정치의 근본이고 법은 정치의 도구’라며 ‘군주가 먼저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답한다. 한편 신숙주는 ‘법에 폐단이 없을 수 없으니 그것은 마치 오묘한 선율에도 음탕한 음악이 들어있는 것과 같다’며 언로의 개방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석형 또한 중국 북송의 시인 소식의 말을 인용, ‘깃털처럼 보잘것없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책문은 이처럼 앞으로 관료가 될 청년 지식인이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떻게 나라를 위해 활약할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이들이 그리는 국가의 청사진에서 나라사랑도 읽을 수도 있다.
책문의 책표지.


지은이 김태완 씨는 책문과 고서들을 일일이 파헤치며, ‘과거’를 ‘현재’의 문제로 옮겨놓는다. 지금 21세기의 우리들에게도 책문 속의 절박한 문답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박광전(1526~1597)이 정벌과 화친 사이에서 국가의 존립위기와 대의명분을 고뇌하는 선조에게 명쾌한 해답을 던진 대목이 그렇다. ‘정벌은 힘, 화친은 형세에 달려 있다’고 전제, ‘덕을 쌓아 적이 저절로 귀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진언한 박광전의 대답은 오늘날 우리가 대미관계나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 곱씹어 볼 부분이다. 또 ‘외교관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가’를 묻는 중종의 질문에 김의정(1495~1548)은 ‘재능보다 덕을 우선해야 한다’며 사신의 능력은 ‘덕행’에 달려있다고 말한 대답도 마찬가지다.

‘책문-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편저
소나무 / 2만원
김철우 | in-gan@buddhapia.com |
2004-11-16 오후 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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