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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문화협회 교도소 다도교육 봉사 현장


11월 13일 천안개방교도소에서 열린 다도교육에 참가한 재소자들이 직접 차를 우려 마시고 있다.
삭막하기만할 것 같은 교도소의 높은 담을 넘어 소박한 찻자리가 꾸려졌다.
(사)한국차문화협회 천안지회(회장 전재분)가 한 달에 한 번 천안개방교도소(소장 송두식) 재소자들을 위해 마련하는 다도교육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천안개방교도소는 6개월~1년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받은 가석방예정자들의 사회적응훈련기관으로, 다도교육은 이들의 시설적응교육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설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하루 종일 이어지는 ‘정신교육’에 지친 탓인지 강당에 모여 앉은 30여 명의 재소자들은 그리 표정이 밝지 않다. 게다가 ‘여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다도교육이라니.

다구가 차려지고 찻자리 마다 다식과 꽃이 차려지는 동안에도 마뜩찮게 여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봉사자로 참여한 다도 사범 6명의 표정이 조금씩 굳는다. 이 때 전재분 회장이 자연스레 마이크를 잡고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여러분 다도라고 하면 차 한 잔 마시는 게 뭐 저리 복잡한가 생각하시죠? 오늘 저희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차를 마시는 5분 동안 우리 민족의 천년의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도소 다도교육봉사를 이끌고 있는 한국차문화협회 천안지회장 전재분 회장
전 회장이 차의 효능과 역사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치자 바로 봉사자들의 ‘선비차’ 시연이 펼쳐진다. 처음 접하는 다도 시연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재소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은 찻자리가 펼쳐지자 서서히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봉사자 한 명과 5~6명의 재소자들이 마주 앉아 차를 우리고 나눠 마시기를 여러 차례. 썰렁하던 강당이 차의 온기로 금새 따뜻해진다. 직접 차를 우려 보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찻상 앞에 둔 꽃의 향기를 맡기도 한다. 중국식당을 운영했다는 김민수(38, 가명) 씨는 “티백 녹차는 마셔봤지만 다구로 차를 우려보기는 처음”이라며 “출소 후에 차를 계속 배워보고 싶다”고 말한다.

어느덧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다담(茶談) 시간이 끝나고, 재소자들은 아쉬움을 남기며 자리로 돌아간다. 그 와중에도 박영춘(47, 가명) 씨는 “저녁 먹은 후에 한 잔 마시고 싶다”며 남은 차를 봉지 째 얻어간다.
송두식 소장은 “정서가 불안정해 죄를 짓게 된 재소자들에게 스스로 사고하는 자율훈련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다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반응이 매우 좋고 교육시간을 늘려달라는 요청도 있다”고 말한다.

보람을 느끼기는 봉사자들도 마찬가지. 이영미 씨는 “처음에는 떨리고 긴장됐지만 이제는 차를 나누며 재소자들의 고민을 듣기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94년 창립한 천안지회는 지난 4월부터 교도소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천안 소년원에 다도봉사를 계획했다가 천안개방교도소와 인연이 닿아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8~10여 명의 봉사자들이 매번 다구와 차, 보온병, 방석을 비롯해 자비로 떡도 준비해 가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들은 기쁘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전 회장은 “재소자들은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차를 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만나는 차 한 잔이 재소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이것이 차와의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밝게 웃는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4-11-18 오후 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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