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조계종 교구본사가 총무, 교무, 재무, 기획, 사회, 포교, 호법 등 7직의 부재와 이에 따른 업무 지연으로 본사(本寺)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포교, 사회 국장이 공석이거나 비상근인 본사도 각각 11개, 14개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장자치시대의 도래와 사회전반의 수행 열기에도 불구하고 교구본사들이 이러한 흐름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것은 본지가 조계종 24개 교구본사를 대상으로 7직의 보직 여부와 상근 현황 등을 점검한 결과 드러났다. 7직은 조계종이 지방종정법을 통해 교구본사가 갖춰야 할 직책으로 규정하고 있는 교구행정의 핵심역할이다.
조사에 따르면 24개 교구본사 중 1/3이나 되는 8개 본사가 아직도 7직을 구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7개 교구본사는 2~3개 직책이 공석이고, 총무 재무 교무 3직만 두고 있는 본사도 있었다. 아직도 교구행정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본사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7직 모두 상근하고 있는 곳은 월정사, 불국사, 해인사, 통도사 등 4곳에 불과했으며, 다른 본사는 3직만 상근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총무 스님만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있었다.
호남지역 A본사의 한 종무원은 “담당 국장 스님이 없거나 상근하지 않는 분야의 업무는 다른 부서의 종무원이 함께 맡게 돼 일이 늦어지거나 아예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이렇다보니 본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총무 스님만 상근하는 영남지역의 B본사의 경우 사찰 업무 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포교는 물론 지역 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고, 같은 지역 C본사는 열악한 종무체계와 행정력 부재로 지역 내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포교와 사회분야를 담당하는 소임자가 없거나 비상근인 교구본사가 절반을 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일을 한다는 점에서 보면, 활발한 포교활동과 사회활동이 그만큼 뒤쳐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창 월정사가 주지 스님과 7직 스님들을 상근시키며 종무행정체계를 바로 세우면서 다양한 문화포교활동을 벌이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사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불국사와 해인사, 통도사 등도 다양한 문화ㆍ신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역민과 불자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충청지역 D교구본사의 한 국장 스님은 “행정업무 외에도, 산사음악회와 템플스테이의 활성화, 크고 작은 지역현안 등으로 대부분 교구본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지만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포교와 사회분야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계종 관계자들은 7직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원인으로 주지 스님의 인맥에 의한 인사와 담당 스님들의 사명감 부족을 우선 꼽는다. 인사 기준이 능력과 전문성보다는 ‘자기 사람 심기’에 있다 보니 국장 스님들이 최선을 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스님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이나 교육 등의 동기부여가 적어 대다수 스님들이 소임을 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7직 체계 확립과 함께 국장 소임자의 전문성 제고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포교, 문화, 환경 등의 사회활동을 내실 있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자리’만 채우는 차원이 아니라 ‘실무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단 관계자들은 우선 경영, 회계와 같은 사찰 운영분야 뿐만 아니라 포교, 사회일반 등 날로 확대되는 사회적 역할에 맞게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의식교육과 실무교육이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업무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위해서는 7직 임기제를 도입하고 재가 종무원들을 충원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또한 교구본사 7직을 수행하면서 말사의 주지를 겸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조계종 총무부장 무관 스님은 “사회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해야 하는 곳이 교구본사”라며 “교구본사 국장 스님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을 실시하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