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3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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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없는 절 봉선사, 일주문 상량하던 날
개산 1000년만에 일주문 세워-천정복장도 눈길
일주문 상량보 위에 일종의 타임캡슐인 천정복장을 올리는 모습.
“오늘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하면 떠오르는 4무(四無=일주문ㆍ암자ㆍ입장료(문화재관람료)ㆍ큰법당(대웅전) 한자) 가운데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봉선사에도 이제 일주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11월 5일 새로 건립된 봉선사 일주문의 상량식에서 주지 철안 스님의 감격스런 한마디였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청량한 가을하늘 고운단풍이 화려한 광릉 봉선사에서는 원로스님들과 주지 철안 스님을 비롯 신도 200여명이 모여 일주문 상량법회를 봉행했다. 상량식이 시작되자 조실인 월운 스님이 직접 작성한 상량문을 능엄학림 중강 정원 스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렸다.

지난날 예종 원년(1469)에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절을 창건하니
칸수로 따져 89칸이었네.
임진 병자 두 난리에 모두가 불탔는데
낭혜와 계민 두 스님의 주선으로 복원한 이래,
사격은 교종본산에 이르렀고
(중략)
꼭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일주문이 없이
마실 집과 맞닿아 있으니
마치 즐비한 고궁이나 재실 같아서
찾아오는 이들이 신심내기에 부족했네(후략)

산문 없는 절 봉선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새로 만들어지는 일주문으로 들어서는 모든 이들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월운 스님의 상량문 봉독을 마치자 정인 스님의 신중작법이 이어졌다. 정인 스님의 염불소리에 맞춰 주지 철안 스님과 산중의 어른 스님들은 곧 올라갈 상량보의 파여진 홈에 상량문과 향을 넣고 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후대에 이 문을 중수하는 이들이 봉함을 열면 일주문의 내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청동 수장고에 들어간 30여 복장물. 이 가운데 현대불교신문 전체 지면을 담은 CD도 들어있다.


이날 상량식에서는 상량문 외에 다른 하나가 더 추가됐다. 상량보 위에 ‘천정복장(天井福藏)’이 올라간 것이다. 보통 불상을 봉안 때 ‘복장(腹藏)’을 넣는 의식은 흔하지만 건축물에 ‘복장(福藏)’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봉선사에서는 이번에 특별히 가로, 세로 너비가 70cm인 초대형 청동 수장고(收藏庫)를 마련했다. 수장고 제작은 사리함을 전문으로 만들어온 금속공예가 이종길 씨가 맡았다.

철안 스님이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수장고에 30여 가지 복장물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넣었다. 먼저 밀운 스님이 평소에 모시던 종유석 부처님이 들어갔다. 다음으로 밀운 스님이 대종사 법계 품수 때 받은 불자(拂子), 당시 입었던 가사 장삼, 목발우 등 불교용품 일습이 놓였다. 불교관계 논문 40여권, 각종 경전, 사경들도 포함됐다. 이밖에 고려대장경 CD, 사리탑, 월남침향, 백두산 천지의 돌, 봉선사본말사지(1950刊), 금강저, 동국역경원 불교성전, 현대불교신문 창간호부터 최근 10년 동안의 PDF파일이 담긴 CD, 불교신문 창간호 동판, 도목수 김배능 거사의 대패 등이 함께 봉안 됐다. 마지막으로 철안 스님이 소장하던 티베트 구게왕국 출토 ‘티베트장경’이 들어갈 무렵 밀운 스님은 붉은 팥 한 줌을 들어 복장물을 넣는 대중들을 향해 뿌렸다. 액막이였다. 그동안 신도들은 ‘화엄성중’을 목청껏 외치며 정근을 이어나갔다.

뚜껑이 닫히고 무명천으로 사방을 묶은 청동함은 곧 일주문 지붕 아래로 들려올라 갔다. 봉선사 일주문의 천정복장은 일종의 불교식 ‘타임캡슐’인 셈이다. 하지만 타임캡슐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단지 개봉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불교 복장은 불사의 영험을 비는 고차원적 의식이라는 점에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철안 스님은 “일주문에 복장(福藏)을 하게 된 것은 시대의 문화ㆍ사회ㆍ역사성이 더해지는 것이 좋겠다는 어른 스님의 뜻에 따라 산문을 들어서는 대중들이 머리위에 경전을 이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밝혔다.

4개의 기둥이 한 줄로 서서 거대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봉선사의 일주문은 다포집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하다는 조선후기 양식의 ‘외 9포’ 형식이다. 지난 8월부터 고건축장 김배능(중요무형문화재 제439호 기능보유자) 거사가 도목수를 맡아 일주문 불사를 진행해 왔다. 기둥에 쓰인 목재는 밀도가 높고 단단해 물에 가라앉는 아프리카산 특수목 ‘부빈가’를 사용했다. 그 밑으로 기둥을 받치는 화강암 하나의 무게는 무려 7톤이나 나간다. 김배능 거사는 “100~200년 후에도 문화재로써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사찰장엄의 전형을 만든다는 원력을 세우고 불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일주문 낙성은 오는 12월 15일 경.

처음 일주문 불사를 계획했던 前주지 일면 스님은 이날 사중 소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서는 첫 문이며 한마음으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주문의 모양이 기둥 한 줄로 서 있는 것은 어디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곧바로 서있고 이 문에 들어서면 누구나 중도의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라며 일주문 건립 의의를 되새겼다.

회주 밀운 스님도 “산문을 연 969년 이래 10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일주문이 생겼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대중들이 반야심경 봉독이 시작하자 상량보가 기중기에 걸려 천천히 올라갔다. 상량보가 위치를 잡을 무렵 일제히 “불! 법! 승!” 삼보를 외치는 대중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꿍꽝’거리며 상량보를 두들기는 목수들의 망치 소리가 광릉 숲을 퍼져나가는 가운데 이날 상량식이 마무리 됐다.
조용수 기자 | pressphoto@hanmail.net
2004-11-05 오후 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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