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6. 삼국시대 ④
이 때는 삼국이 모두 나라가 안정되고 중국에서 문물, 특히 불교문화를 수입하여 불상, 불구를 제작해서 일본으로 보냈고 인적교류도 많았다. 고구려와 백제에서 이미 불교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신라에서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 이후 비로소 불교가 공인되었다. 불사가 많이 일어나 새로 사찰이 건립되었다. 중국에 갔던 승려들이 불서와 자리를 가지고 귀국했다. 자연히 불전헌다의식이 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민간차원에서는 이때 일본에도 차에 관한 것이 전파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신라를 가야를 병합한 것으로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와 그들의 다풍이 함께 흡수되었음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① 신라가 가야를 복속시킴으로 경남 하동 일대의 차산지는 물론 가야인의 음다풍습이 신라로 흡수되었다.
② 연기(緣起)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고 뒤에 있는 대숲에 차나무를 심었다.
③ 능가보월탑비문에 ‘향명(香茗)’이란 말이 있다.
④ 이 해에 고구려에서는 법상을 진에 보내 불교시말을 배워오게 하고, 신라를 황룡사 장육존상을 완성하고 안홍이 중국에서 불사리를 가지고 왔으며, 원효가 왕명으로 법흥사를 창건했다.
⑤ 백제는 지혜가 안흥사에 53불 벽화를 완성하고 신라는 일본에 불상을 전했다. 신라 화랑들이 차생활을 한 자취가 남아 있다.
⑥ 백제에서는 92년에 기술자를 일본에 보내 법흥사 불당을 완성하고 이 해에 아좌태자가 건너가 성덕태자상을 그렸다.
⑦ 유효작이 양의 약제에게서 차와 쌀 등 여덟 가지를 하사 받다.
⑧ 법요는 남송의 명승으로 나이가 들어 밥 대신 차를 마셨다. <속명승전>
포령휘 는 선조의 누이 동생으로 ‘향명칙’을 지었다.
담제도인은 양의 효무제 때(458) 장엄사의 스님이다. 팔공산에 있을 때 신안왕 자란과 예장왕 자상 형제가 도인이 끓인 차를 마셔보고 감로(甘露)라 찬탄했다. <송명>
⑨ 이원은 남송의 유경숙이 편찬한 책으로 “섬현의 진무처가 옛 무덤에 차를 공양하여 십만금을 얻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⑩ 서적은 태종(唐)에게서 ‘이(李)’로 사성을 받았으며 후에 <신수본초>를 남겼다.
<한국>
527 이차돈의 순교(신라)
대통사, 대조사 창건(백제)
532 가야의 멸망①
535 흥륜사 창건(신라)
539 일본에 불교 전함(백제)
백률사 창건(신라)
539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고구려)
544 화엄사 창건(연기조사)②
일본에 사신 파견(백제)
546 수철화상의 능가보월탑비③
549 승상덕?이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신라)
552 금동석가상, 미륵석불과 경론을 일본에 보냄. 일본에 불교 전파(백제).
553 황룡사 기공
554 승려 9인의 도일(渡日)
565 진(陳)에서 불경 2700여권 도입(신라)
576 법상(法上)을 진에 보냄④
579 지혜의 53불 벽화⑤
581 선운사 창건(백제)
583 일본에 불상 보냄(백제)
597 아좌태자 도일⑥
599 수덕사, 금산사 창건
<중국>
@ 유효작의 다시(茶詩)⑦
@ 달마가 중국으로 건너옴
@ 법요, 포령휘, 담제도인⑧
@ 이원⑨
547 양무제
580 수의 등장
589 수의 통일
594 서적⑩
<일본>
@금명천황(금명天皇, 509~571)이 백제 왕이 보낸 불교에 관한 물품을 받고 차를 내림.<일본서기>
<서양, 기타>
529 베네딕트 수도원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