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김현아 지음 / 책갈피 / 1만3천원
말라리아 약을 챙겨야 할 것 같은 밀림에 대한 상상, 연인의 제인마치의 표정 떠오르는 정도로 베트남을 그렸던 저자는 피스보트의 초대 받아 아시아 여러 지역을 답사한다. 그러던 중 베트남의 다낭이라는 항구도시에서 ‘베트남전의 한국군’이라는 코스에 참여하게 되면서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는 그동안 베트남전 참전군인, 그들의 무용담들, 미국영화에서 보아온 전쟁 등을 통해 베트남을 단편적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편견을 깨부순다. 물론 다양한 이들의 전쟁 기억,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 전쟁이야기가 작가의 여정과 함께 있지만, 이 책은 전쟁을 뼈 져리게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돼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눈물짓게 되고, 때로는 깜짝 놀라 흥분하게도 만들게 하고 있다. 전쟁을 겪은, 살아남은 다양한 사람들-군인, 시인, 감독, 다리를 잃은 할머니, 부인과 자식을 잃은 할아버지, 살아남은 아기-의 이야기, 전쟁을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 스무 살 젊은 나이 부모님께 소 한 마리라도 장만해 드릴 생각으로 베트남에 갔던 50대 이야기, 마지막에는 ‘다시는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 이야기까지 이 책은 이들의 말과 표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삶, 즉 ‘끝나지 않은 전쟁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책은 ‘다름’의 이야기도 한다. 그저 다른 것이지 우열도 강약도 아니라는 것을 이미 이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내안에 녹아있지 않은 다름을 인정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월남 패망했다고 나는 들어왔고, 항미전쟁을 통해 베트남 해방을 이루었다’고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전혀 다른 이름, 다른 기억으로. 전쟁의 이야기는 심지어 꿈에서조차 이야기를 하게 한다.
“베트남에서 항상 하는 얘기가 있죠. ‘가라 그냥 그렇게 계속 가라. 그러면 그곳에 도달할 것이다’ 바로 그곳, 당신이 마음속에 꿈꾸는 그 속에서도.” 베트남 감독 겸 시인 반레가 말한 꿈은 아마 전쟁이 없는 평화가 아니었을까.
요즘 이라크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고 있다. 최근 일본인이 죽었다. 일본 열도가 술렁거리고 있다. 복수를 위해서라도 자위대 파견을 증강해야한다 혹은 이라크에서 철수해야한다며 온 국민이 각각의 의견을 내놓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 일본인의 부모는 지금도 아들의 사진을 잡고 목 놓아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울다 지쳐 쓰러졌을지도.
우리의 김선일 씨도 아프게 떠났다. 인터넷과 방송 모두 한 때 보도, 분석, 주장들로 혼란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그 때의 흥분은 추스렸을 테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와 다시 일상이다. 하지만 그 어미는, 동생은 아린 가슴을 쓰다듬어야 하는 날 적지 않을게다. 꿈에 나올지도 모른다. 그 기억은 언제쯤 떠나 그들의 삶을 평화롭게 해 줄까. 기억은 떠날 수 있는 걸까? 시간, 보상, 혹은 종전, 진심어린 사과, 무엇이 그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데 필요한 걸까?
지난 봄 즈음, 한참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 논란이 있을 무렵, 베트남에서 일하는 파트너 짱(Trang)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언니, 그래서 이라크에 군대가 가는 거야? 그럼 다음엔 베트남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라크에 가서 또 사과하고 답사하고 위령비를 세우고 그래야겠네?” “…”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도 베트남 전쟁도 내 몸으로 겪지 않은 나, 수많은 다른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들의 전쟁, 전쟁 후에 기억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쟁의 기억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김정우(나와우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