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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ㆍ없다-다시 쓰는 가족이야기>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 현대 한국사회 가족의 실상을 젊은 시각들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믿음은, 이미 ‘가족해체기’를 맞고 있는 우리시대에서 벌써 빗겨 서있다고 증언한다.
그럼, 왜 이제 와서 해묵은 가족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인가. 그것도 가족이라는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현실에서, 또 ‘가족은 없다’고 선언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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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사회학과(조한혜정 교수)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안상수 안병학 교수), 대안학교인 하자 작업장학교 65명의 학생들이 올 1학기 가족사회학 합동수업에서 진지하게 가족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또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모아 직접 책으로 묶어냈다. 만약 이 책이 진한 ‘가족애’를 주제로 눈물샘을 자극할 것이라 예상하고 집어 든다면, 아마도 이런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갈 것이다. 가족에 관한 기존 통념을 허무는 이야기가 이 책에서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없다?
우선,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증오하는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복수하지.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아빠를 만나고 싶다’, ‘엄마가 내 눈앞에서 아빠에게 발길질을 당하다. 이유는 세차를 하지 않아서’ 등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감이 책 곳곳이 묻혀있다. 심지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제제가 자신의 아버지를 늙은 나무라고 상상하며 마음속에서 죽였듯이, 나의 가족들을 마음속에서 죽였을지도 모른다’며 가족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글도 눈의 띈다. 또 가족에 관한 고정관념도 바꾸기를 주문한다. 가족은 어릴 때는 포근하지만, 커서는 부담스럽고 불편한 ‘엄마의 유방’과 같고,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가입된 ‘국민연금’과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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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족은 있다
하지만 어둡게 가족을 바라보는 건만은 아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우고자 한다. ‘고리에 고리를 잇는 나의 가족들, 그들과 함께 살아온 정원 한 가운데 단풍나무, 언제나 한 몸 가득 안아주는 집’, ‘집은 공간이다. 가족은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가족은 하나의 끈이다.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의무로, 소속해주는 사랑으로 묶어주는 끈’ 등 항상 힘이 되는 공동체로 가족을 기억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책은 이처럼 제각기 다른 가족에 대한 정의와 그 경험들을 글, 이미지, 도식 등의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마치 ‘주름이 있는 삶’을 엿보는 감동을 안겨주듯이 ‘특별한’ 속사정을 쏟아낸다. 주제도 틀에 가두지 않았다. 사랑, 연애, 동거, 할아버지, 땅, 주거 및 식탁공동체 등 살아가는 모습 하나하나에 초점이 맞춰졌다.
#우리는 ‘새로운 가족상’을 이렇게 말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비정상적 가족은 없다’ ‘노는 가족’ ‘방목 가족’ 등 8개의 조로 나뉘어 머리를 맞댔다. 서로 다른 환경과 성격을 가진 다양한 경험들이 철저히 체험적 지식으로 다뤄졌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 이렇다 할 결론은 내진 못하고, 단지 경험의 여러 결을 그대로 보여줬기에 그렇다. 때문에 책에서는 ‘새로운 가족상’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가족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분명한 건 견고한 가족의 개념이 어떻게 균열이 생기고 있는지, 또 이를 메울 수 있는 지혜를 공유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기획자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연세대 조한혜정 사회학과 교수는 “봉건적인 대가족이 해체된 뒤 생겨난 근대 부부 중심의 핵가족 제도가 지금 해체 중”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연세대, 하자 작업장 학교, 홍익대 학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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