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2. 삼국시대 ②
이 시기는 우리나라와 국제간의 교류가 빈번해지는 때였다. 고구려는 정치기반이 튼튼해지면서 중국의 문물을 많이 받아들이고 교류도 잦았다. 그 중에도 동수(冬壽)의 귀화는 중국 고급문화의 직수입의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는 제후들의 인사를 받는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중국은 좌사의 ‘교녀시’, 장재의 ‘등성도백토루시’, 두육의 ?賦(천부) 등 차가 문예 작품의 주제로 등장할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중국의 음다(飮茶) 문화가 조금씩 들어왔으리라 짐작 할 수 있다. 한편 백제는 일본과의 왕래가 잦았으니 우리의 다방면의 문화가 전파되었다. 그것도 일본의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준 영향력이 컸다.
①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동수(冬壽)가 귀화했다면 당시의 중국 상류층의 음다 풍습이 그대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② 손초(218~293) 서진의 문인으로 <여장>이라는 말을 썼다.
위요는 오의 문인으로 손호(임금)가 아껴 술 대신에 차를 마시게 했다.
장읍(230년 전후) <황아>라는 책에 차 만드는 법과 끓이는 법을 설명했다.
장화(232~300) 서진인. <박물지>에 “좋은 차를 마시면 잠이 적어진다”고 했다.
부함(239~294) 다죽(茶粥)을 파는 노파 이야기를 남겼다.
좌사(250~305) 유명한 ‘교녀시(嬌女詩)’에서 차 이야기를 썼다.
유곤(271~318)은 족하(?)인 유연에게 차 끓이는 법을 써 주었다.
③ 곽박(276~324) 동진인. <爾雅註譯>을 했고 다연(茶碾, 차 맷돌)에 관해 썼다.
부손 위나라 사람. 촉에서 벼슬을 했다. 운남차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홍군거 <식?>을 지음. 흰 거품이 이는 차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육납 오나라 사람. 손님을 간단한 다과(茶菓)로 대접했다.
장재 서진 사람. ‘등성도백도루시(登成都白?樓詩)’에서 “향기로운 차는 어떤 음료보다 좋다”고 했다.
두육 (?~311) 차 노래 ‘?칙(?)’를 썼다.
우홍은 단병자를 만나 큰 차나무를 알게 되었다.<신이기(神異記)>
④ 환온(桓溫, 313~374) 동진인으로 원제(元帝)의 부마가 됨. 후에 황제 혁(奕)을 폐하고 간문제(簡文帝)를 옹립했다. 그는 평소 손님을 차와 과일로만 대접했다.
<한국>
337 동수(冬壽)의 고구려 귀화 ①
<중국>
@ 손초, 위요, 장읍, 장화, 부함, 좌사, 유곤 ②
280 진(晋)의 통일
@ 곽박, 부손, 홍군거, 육납, 장재, 두육, 우홍 ③
312 환온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