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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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리고 대화. 그 속에 삶을 담았다.
‘대화’,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지음
법정 스님.
만남에는 대화가 있다. 그리고 그 대화에는 사람의 향기가 담긴다. 2003년 어느 봄날, 매화 꽃 핀 서울 길상사에서 만난 법정 스님과 소설가 최인호 씨가 나눈 대화가 그랬다.

강원도 오두막집에서 생사를 걸었던 일흔의 출가사문과 스님이 되려했던 예순의 천주교 신자 소설가. 그들이 만나 인생을 말했다. 종교와 죽음, 사랑, 가족, 행복, 교육 등 우리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인생전반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3시간 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피천득 씨.


월간 ‘샘터’가 펴낸 <대화>. 우리 시대 지성인 4명의 이야기를 일상의 언어로 담아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과 13대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 샘터사 고문, 법정 스님과 소설가 최인호 씨가 살아오면서 체득한 삶의 지혜와 경륜을 두 편의 대담에서 꾸밈없이 쏟아냈다.

특히 아흔, 여든, 일흔, 예순 줄에 들어선 네 사람의 인생 이야기는 어쭙잖게 살아온 주변 인생들에게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
우선 법정 스님과 최 씨의 대화는 ‘행복’이란 화제에서 시작된다.
김재순 씨.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요즘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행복과 쾌락은 전혀 다른 종류인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같은데요.”(최인호)

“안목은 사물을 보는 시선일 텐데 그것은 무엇엔가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통해서 갖추게 됩니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가격이 얼마라는 식으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의 가치로 보지요. 이는 똑같은 눈을 가졌으면서도 안목에 차이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법정 스님)
최인호 씨.


이들이 공감한 ‘안목의 차이’는 이후 사랑, 가족, 깨어있음 등의 화제로까지 이어진다. 나눔과 보살핌, 관심을 본질로 한 사랑이 소유욕 때문에 ‘이기적인 흥정’으로 변질됐다는 법정 스님의 생각,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는 공양미 3백석이 우리 마음의 깨어있음을 가로막는 ‘벽’이라는 최 씨의 이야기 등이 바로 그렇다.

법정 스님과 최 씨의 내면성찰은 ‘바보의 벽’ 허물기로 정점을 이룬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양미 3백석은 있어야 한다는 자기 논리, 그게 일종의 바보의 벽이다. 그 벽을 부서뜨려야만 사람은 변화할 수 있고, 남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최 씨가 말하자, 법정 스님은 “깨어 있음은 자기를 관찰하는 것이다. 맑고 투명한 영혼과 정신을 지니는 순간, 바로 그 때가 본래의 자아로 돌아간다”며 심지어 화두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답한다.
<대화>의 표지.


대화의 내리막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인식 틀 깨기’로 계속된다. 나눔의 문제로 화제가 모아진다. 먼저 법정 스님은 ‘베푼다’는 말에 상당한 저항감을 표한다. 이 단어에서 수직ㆍ주종 관계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반면 ‘나누다’라는 말에 수평적인 관계가 담겨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진정한 이웃사랑은 바로 나눔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최 씨는 ‘너와 나’의 관계부터 회복돼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불교의 무주상보시가 나눔의 필수 덕목이 된다고 스님의 말을 받는다.

이와 함께 올해로 94세인 피천득 선생은 자신의 수필집 제목이기도 한 인연과 예술, 신앙, 여성, 나이 듦 등을 주제로 김재순 고문과 이야기를 나눈다. 무엇보다도 피 선생은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 중에 정말 명성 그대로라고 느낀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금강산이고 또 하나는 도산 선생이다”라고 도산 안창호와의 인연을 회고한다.

“선생의 삶은 진실 그 자체였죠. 아마 일생을 두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을 듯싶습니다. 살다보면 부득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생기지만, 도산 선생은 ‘만약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동지에게 큰 해가 돌아갈 때만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럴 때도 침묵을 지키며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의 대화에서는 죽음에 대해서도 다뤄진다. 김 고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철학자의 종착지”라고 하자, 피 선생도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한 만년의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이 든다는 것은 젊은 날의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 죽음도 배워야 한다”고 말을 잇는다.

고령으로 집필활동을 거의 중단한 피천득 선생과 대장암 투병으로 했던 김재순 고문, ‘맑고향기롭게’의 회주조차 버린 법정 스님과 신문 연재소설 집필로 바쁜 최인호 씨의 두 편의 대담. 이 책은 좀처럼 성사되기 어려운 이들의 대화를 통해서 향기로운 삶이 무엇이고, 영혼을 어떻게 울리는지를 아낌없이 전해주고 있다.
김철우 | in-gan@buddhapia.com |
2004-10-26 오전 9:21:00
 
한마디
office 이런 잔잔한 기사가 좋습니다. 종단 기사는 좀...
(2004-10-26 오후 5: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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