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넘치는 시대다. 개인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에는 사진 자료가 넘쳐나고 가구별 디지털 카메라 보급률은 이미 40%가 넘었다. 하지만 한 마을이 엮어온 역사와 풍광,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는데 사진만으론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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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이호신 화백은 카메라가 아닌 화첩(畵帖)을 챙겨 ‘우리마을 그림순례’를 떠났다. 지난 20여년 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그린 그림과 글을 묶어 펴낸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나 <길에서 쓴 그림일기> 등의 책에서 볼 수 있듯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이 땅에서 나고 빚어진 얼굴과 그 흙의 숨결’이다.
<달이 솟는 산마을>에는 지난 3년간 전남 영암에 머무르며 그린 풍광이 펼쳐져 있다. 강우방 교수(이화여대)가 “자연의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맑고 따뜻한 그림 속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평했듯이, 이 화백의 그림은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주민들과 함께 먹고 잠자며 마을을 돌고 산을 오르내리며 그린 ‘발로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마을의 역사를 전하는 대목에선 영암군청과 문화관, 도서관 등을 샅샅이 뒤져 사료(史料)를 찾아냈을 수고로움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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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책에는 마을의 풍광과 함께 마을이 형성된 역사와 풍습 그리고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는 생활모습 등도 꼼꼼히 옮겨져 있다. 수대에 걸쳐 한 마을에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자연환경은 바로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꽃이 피거나 눈이 내린 마을 구석구석의 정겨운 풍경과 고추 모종을 이고 가는 이순 할머니, 작가에게 머물 집을 제공한 동구림리의 문영숙 씨 등 주민들의 모습도 화폭에 자리 잡아 정겨움을 더한다.
월출산과 도갑사의 모습을 담은 그림도 빼놓을 수 없다. 월출산 곳곳에 자리 잡은 마애불의 모습도 따뜻한 수묵으로 다가오고 눈 속에서 흔들리는 풍경(風磬), 달이 휘영청 뜬 도갑사의 장관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림 순례’가 단순히 ‘풍광’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작업만은 아니었다. “그림 그리는 이가 배낭 메고 산천과 마을을 떠돌아다니면서 느끼는 감회는 늘 시대와의 불화”라고 말하는 이 화백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황폐화되어가는 우리의 터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 놓는다.
“자본의 논리가 행복 추구로 치닫는 마당에 버림받는 농토와 깎이는 산, 미풍양속이 와해되고 만 오늘날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를 염려하고, 나무가 숲을 이룰 수 있는 토양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한편 이 화백은 출간을 기념해 10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영암 도기문화센터에서 ‘영암의 빛과 바람’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에서는 영암의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 50여 점이 선보인다. (061)470-2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