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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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가 바라보는 오늘날의 한국불교
"저는 계를 받은 바도 없고, 신도증도 없는 엉터리 불자입니다. 하지만 부처님 법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태생으로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를 전공했으며 2001년 한국에 귀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의 저술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애정을 보여준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大). 10월 23일 금강대에서 열린 국제불교학술회의 참가차 귀국한 그를 만나 불교의 현대적 의의와 한국불교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불교와의 인연은

러시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법구경>을 처음 접했는데,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당시 공산정권 하에서 법구경이 번역돼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로,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법구경> 출판을 금하려던 러시아 정부에 대해 스리랑카 정부가 “법구경은 우리나라의 국보다”며 외교적인 압력을 가해 출판이 가능해졌다. "몽환으로 몽환을 없앨 수 없다" "만 마리 코끼리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를 다스리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는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의의는

시대적 간극으로 인해 부처님 법이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 해결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 테지만, 분명히 해결의 실마리를 담고 있다. 한 예로 현대 자본주의의 폐단을 야기하는 소유욕을 순화하는 데 부처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된다.

한국사회의 문제 해결에 불교가 기여한다면

한국은 극단적인 약육강식 사회다. 한국사회처럼 삶이 전투적인 곳은 드물다. 여기에는 출세주의 영향이 크다. 이 같은 출세주의나 소유욕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 불교는 이를 밝히고 알려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불교의 사회참여는 어떤 식이 돼야할까

사회적 약자에 현실적인 관심과 도움을 줘야 한다. 네팔이나 스리랑카와 같은 불교국가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 불교가 앞장서야 한다. 또 노인·장애인·청년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한다. 청년 문제는 간과되기 쉬운데, 청년층은 전통적인 연륜주의와 입시지옥의 피해자 아닌가. 자살 충동을 느끼기 쉬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불교는 정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불교의 문제점이라면

재가자가 설 곳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종단 구조를 보면, 총무원과 문중을 중심으로 배타적인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정작 주인공이 돼야할 재가자는 적절한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 종단을 꾸려나가는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재가자라고 본다면, 재가자가 권력 중심에 있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한국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가자의 역할이 커지고, 사찰운영이 투명해져야 한다.

요즘 주된 연구 관심사는

'사회진화론과 한국민주주의'를 주제로 책을 집필 중이다.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 논리가 일제 말기에 어떻게 수용됐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사회진화론은 당시 식민지 사회의 주류 세력에 폭넓게 수용됐고, 약육강식을 소이연(所以然)뿐 아니라 소당연(所當然)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계획은

만해 스님의 저서를 영어로 번역할 계획을 갖고 있다. 만해 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가장 완벽하게 실천에 옮긴 분이다. 독립운동가라는 점이 특히 부각되고 있는데, 그보다는 애국심과 종교적 세계주의를 조화시켰다는 데 더 큰 의의를 부여해야한다고 본다. 이야말로 피(彼)와 아(我)를 구별하지 않는,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 아니겠는가.
박익순 기자 |
2004-10-24 오후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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