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본성은 청정해 자비심 내는 것
얼마만큼 아느냐보다 실천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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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들이지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 문화를 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윤리와 도덕과 예법은 참으로 훌륭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다 내버렸어요. 그러니 무엇에 기대고 살겠습니까.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는 오히려 윤리와 도덕을 역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영국 여왕이 안동에 왜 왔겠습니까. 동방예의지국 이미지를 보려고 왔는데 봤는데, 안 그렇더라 그 말입니다. 강대국들은 이미 우리가 그런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956년도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때 이웃 선생님한테 ‘一心正己(일심정기)’라는 글을 받았습니다. 이 글은 ‘마음이 옳아야 몸뚱이가 옳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정신은 안 차리고 육신만 자꾸 치장을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육신은 개 값만도 못합니다. 정신이 중요한데, 이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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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어렵기는 뭐가 어렵습니까. 우리가 몇 달러 가지고 삽니까. 인도나 방글라데시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전통문화는 검약 아니겠습니까. 검약은 쓸데없는 것은 안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것을 하는 사람은 쓸데 있는 일을 못합니다.
아침에 어느 대학에 가서 학생들 등교하는 모습을 한참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손톱 기르고 마치 여자처럼 치장한 남학생들도 많고 여학생들도 공부하러 가는 옷차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혼란스러워보였습니다. 마치 공부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축제하러 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축제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요.
냉탕 온탕을 오가며 목욕하면 좋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왜 그런지는 설명을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몸의 모든 기관과 세포와 근육의 수축이 잘 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따뜻하거나 차게 하면 어느 한쪽이 잘 안되고 그래서 병이 되는 것입니다. 수축 이완이 활발해야 건강하듯이, 우리 정신도 공부할 때 공부하고 일할 때 일하고 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됩니다.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교육과 문화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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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예법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부모 노릇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 못하고, 선생이 선생 노릇 못하기 때문에 예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자기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이기고, 학생이 선생을 이기고…, 이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보세요, 자식이, 학생이 다 이기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찌 살기가 편하겠습니까. 국가는 커다란 가정입니다. 가정을 살리려면 부모부터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일체중생을 늙지 않고 병들지 않게 해주자는 발원으로 출가했습니다. 자기 일신을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고 일체중생을 위해 출가한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지옥에 가서 자기 어머니를 구출했고, 고구려의 아도화상은 어머니 명령대로 했다고 해요. 신라 원광법사도 세속오계에서 효도로써 부모를 섬기라고 했어요. 이렇게 역대조사가 다 어머니 모셨어요, 30년 동안 생식을 한 어떤 조사는 어머니가 하도 익힌 것을 먹으라고 해서 먹긴 먹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다시 생식을 했어요. 요즘 이런 얘기하면 웃음거리 되죠. 효자 아니고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은혜 알고 은혜 갚는 이가 보살’이라 했어요. 능히 은혜를 갚는 자는 선업을 짓는 것이고, 은혜를 아는 자가 능히 정각을 이루게 됩니다. 은혜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부모 은혜입니다. 부모 은혜는 양육하고 근심걱정해주고 희생하고 이렇게 모두 열 가지가 있는데, 열 가지를 다 안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어요. 감사하면 보답 안 할 수가 있느냐 말입니다. 천지신명을 다 받들어도 부모님 섬기는 것만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야말로 최고의 신이요 조물주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지극한 대효(大孝)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출세해서 조상 이름을 날리는 것이 대효라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부모도 중생이니 인과를 알게 해주고, 삼보를 모르면 삼보에 귀의하게 해주고 이렇게 깨달음으로 인도해주는 것이 바로 대효라고 하셨습니다.
효는 곧 예의입니다. 예의는 남을 배려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다해요.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지요. 그러면 그 돈 벌어서 어디다 씁니까. 사치하고 낭비하죠. 이것은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에요. 생명 살리는 일에 쓰면 얼마나 좋습니까.
인간의 본성은 사치하고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청정 광명 환희 원만성취, 바로 이런 마음이 연(緣) 따라 자꾸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 보면 자비심 내고, 부정한 것을 보면 정직한 마음을 내고, 어리석은 것을 보면 지혜를 내고, 이렇게 인간 본성은 연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요. 맞는 말이지만 필요할 때는 귀천을 가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품성을 회복하고 인성을 회복하고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사대악업(四大惡業)은 가급적이면 피해야 합니다. 인성을 모질게 하고, 거칠게 하고, 어둡게 하고, 타락케 하는 직업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예(禮) 답지 않은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합니까.
부처님은 오계를 만드셨고, 원광법사는 세속오계를 만들었는데, 그 이후 요즘엔 우리가 규범으로 삼아야 할 가치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섯 가지를 얘기합니다. 첫째는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둘째는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도록 해야 하며, 셋째는 인성을 해롭게 하는 직업은 버리고, 넷째는 시간과 돈은 일의 가치 순으로 쓰며(잘 써야 하며, 그러면 부족하지 않다) 다섯째는 음식은 자연식으로 하며, 여섯째 자연건강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틀림이 없습니다.
요즘에는 참선 공부하는 불자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가르쳐 주는 스승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이것은 참선을 하면서 무슨 해답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참선은 곧 인생공부 입니다. 결국에는 인생을 탐구하는 것인데, 사실 인생 공부는 벌써 끝났어요. 부처님 성도하는 순간에 일체중생이 다 성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나서 평생 실천했지요. 바로 실천이 문제입니다. 얼마만큼 아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처님처럼 살면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요.
실천하는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특성에 맞춰 찾아야 합니다. 글을 잘쓰면 글로, 그림을 잘 그리면 그림으로 자기의 소질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살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마음으로 실천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욕심에서가 아니라 중생을 편하고 이롭게 하겠다는 원력으로 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부자 되는 법을 모릅니까, 건강해지는 비결을 모릅니까. 안 해서 그런 것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평생 참선한다고 앉아 있어도 소용없어요, 포교도 하고 봉사도 하고 이렇게 세상을 위해서 살아야지요. 그런 속에서 깨달음이 오는 것이고요.
참선이나 철학이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탐구입니다.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답은 다르지 않습니다. 딱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바로 답입니다. 인생론을 아무리 읽어보세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답을 찾지 못하는 바로 그것이 답입니다. 화두로 삼아 보세요.
살다보면 여러 가지 번뇌가 있습니다. 번뇌는 쫓으려고 하면 더 생깁니다. 그냥 놔두고 시비하지 마세요. 번뇌와 시비하는 것은 마치 못된 놈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사람들 참을성이 부족해서 이것도 제대로 잘 안됩니다. 인내심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참을성뿐만 아니라 화합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세상사는 지혜입니다.
세상을 건강하게 살려면 건강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정도 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면 되겠습니까. 기분 좋다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사세요. 의식과 생각이 싸우면 생각이 이깁니다. 건강하든 그렇지 않든, 의식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면 건강해집니다. 생각이 이기는 것이니까요. 물론 실천이 어렵겠지만 ‘人不願 聖不護(인불원 성불호)’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원치 않으면 성인도 굽어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부청님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행복하다 생각하고 봉사하며 사세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강장수하는 비결 중 꼭 들어가는 것이 신앙을 가지고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일이든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할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둘째,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에게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셋째는 나에게 일어난 문제의 해결책은 생각지 않은 곳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정무 스님은?
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효다. 그리고 효 사상을 바탕으로 인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30년 전 용주사 주지 때 부모은중경탑을 세우고, 현재 주석하고 있는 석남사에도 작년에 똑같은 탑을 세웠다. 언제 어디서나 ‘효’에 대한 설법도 빠지지 않는다. 바르게살기 위해서는 ‘효 사상’을 실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항상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백장청규를 실천하며 제자들에게도 엄격한 수행과 노동을 강조하지만, 신도들에게는 더없이 자상하고 따뜻하다. 1968년 영주포교당에서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신도수련회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련회도 처음으로 여는 등 포교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인도에 12번이나 다녀왔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고 1년에 한 번은 대청봉에 오를 정도로 등산을 즐긴다. 건강해야만 수행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무 스님은 1931년 전북 임피에서 태어나 57년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를 졸업했다. 58년 은적사에서 전강선사를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62년 삼척 영은사에서 탄허 스님을 법사로 대교과를 수료한 뒤 65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63년 김제 부흥사에서 전강 선사를 조실로 모시로 5하안거를 성만했다.
1971~2001년까지 수원 용주사, 여주 신륵사, 이천 영월암 주지를 역임했으며, 현재 안성 석남사에서 회주로 주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