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교육제도는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국민학교(Volksschule)가 4년 과정이고 이 과정이 끝나면 인문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과 직업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 하우프트슐레(Hauptsschule)로 나뉜다.
인문학교에서는 학문연구나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기초부터 배우고, 대개 법대, 의대, 상대, 기초과학관련 대학으로 진학한다. 또 직업학교에서는 페인트칠, 자동차 수리, 목공 등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분야의 기초와 실기를 배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인문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이 21% 내외라는 것이다. 인문학교와 직업학교에 배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국민학교 4학년 담임교사에게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직업을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하여 중2, 고2 때 학교를 바꾸는 제도로 보완하고 있다. 직업학교의 학생이 인문학교로 바꿀 때는 한 학년 내려서 손님학생(Gastschuler)로 간다.
독일의 교육제도가 갖는 특징은 정부가 학생이 어릴 때부터 직업선택과정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으로, 직업에 필요한 학교교육은 중장기적 입장에서 인력수급을 조절한다는 측면이 고려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인문과학 분야를 제한함으로써 사회의 인력자원을 조절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직업학교를 나온 사람도 마이스터(Meister)가 되면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서 인정되고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의 대학이 전국의 고등학교를 내부적으로 등급제 형식으로 차등화하고, 이 기준을 가지고 수시입학성적에 반영하였다 하여 시끄럽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대학들이 음성적으로 등급을 나눔으로써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준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대학의 입장에서는 대학간 경쟁체제에 돌입해 있는 상황에서 우수한 학생 선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국가의 우수인력 수급차원에서 다시 한번 음미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어느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는가이다. 극단적 자본주의적 시각인 소셜다위니즘(Social Darwinism)적 시각에서 최우수의 두뇌를 선별하고 이를 잘 교육해서 이 나라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데 두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적 평등의 개념에서 모든 학교를 평준화하고 평준화된 지식과 기술의 바탕위에서 전 국민을 잘 살게 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에도 함정은 있다. 첫 번째의 우수한 두뇌는 만들어진다 또는 부풀려진 내신 때문에 변별력이 없다는 가설이 그 하나이고, 전 국민의 평준화는 전 국민의 하향평준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가장 많이 바뀐 것이 교육정책이고, 교육정책에 관해서는 전 국민이 전문가 수준에 와있기 때문에 다들 한 마디 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런데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관하여 정부의 간섭이 너무 많다.
정부당국의 교육현장에 대한 간섭은 일제 식민지 때 총독부에서 학교 간섭하던 때보다 더 심하다 볼 수 있다. 대학 신입생 선발과정, 학과신설과정, 학과증원과정, 편입생을 뽑는 과정 등에 교육당국이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한다.
이제 국민소득 1만불 시대, OECD에 가입한 나라답게 교육현장은 대학당국에 맡겨줘라. 정부는 중·장기적 인력수급정책에만 신경 쓰고 나머지는 대학 스스로 자율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21세기의 교육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