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대탑(국보213호)은 고려 10~11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5층 목탑을 모방한 대표적(중략)…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PDA단말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안내를 따라 천년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시실은 극도로 절제된 조명만 비춰지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평소 도록으로만 보아왔던 국보급 성보(聖寶)를 감상하는데 몰두 했다.
그저 서울 목멱산(남산) 기슭의 한갓진 고급 주택가쯤으로 여겼던 곳에 한국 최고의 ‘명품’ 미술관 ‘리움(관장 홍라희)’이 10월 19일 문을 열었다. 미술관 관계자의 안내대로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을 내려 1번 출구를 나서자 낯익은 이태원 초입길이 나왔다. 이곳이 한강을 드나들던 나룻배와 갈매기를 내려다보던 포구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제는 부호들의 저택과 대사관들만 가득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세계적 건축가 3인이 심혈을 기울여 지었다는 리움의 단아한 모습이 펼쳐졌다. 현관을 들어서자 천정까지 뚫려있는 원주기둥 ‘로툰다’의 자연조명이 은은한 로비가 한눈에 펼쳐졌다.
개관 첫날인데도 관람객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미술관 홍보를 담당하는 박민선 과장은 “예약제로만 관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람에 앞서 안내데스크에서 손바닥크기의 PDA(개인정보단말기)를 지급받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PDA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을 음성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작품 앞에 서면 바닥에 깔린 동전크기의 센서를 통해 각 작품정보와 작품설명, 자세히 보기 등이 단말기 화면에 자동으로 나타났다. 가이드 없이도 혼자 작품을 감상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것이다.
고미술관인 ‘뮤지엄1’을 먼저 둘러보았다. 4층 청자 전시실에서부터 원뿔형의 둥근 계단을 따라 각 층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진 전시실의 배치가 특이했다. 현재 전시중인 작품은 모두 120여점으로 이중에는 국보 25점, 보물 35점이 포함돼있다. 개관전시인 만큼 삼성그룹의 창립자 호암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남다른 열정으로 수집해온 미술품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들이 엄선됐다. 사실상 삼성문화재단 산하의 용인 호암미술관, 서울 호암갤러리, 광화문 로뎅갤러리의 국내외 명작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리움을 관람하면 우리나라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의 ‘진품’을 한자리에서 모두 보고 나오는 셈이다.
4층 청자, 3층 분청사기, 2층 서화, 1층 불교미술과 금속공예 전시실에는 한국미술을 대표할 만한 도자기류와 조선 시대 화단을 풍미했던 서화가들의 대표작, 불화, 불상, 등 각종 불교미술작품들을 모두 볼 수 있다. 박 과장은 “국립박물관의 규모를 따라가긴 어렵겠지만, 리움의 한국 고미술 컬렉션은 질과 양에서 국내 최고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교미술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금동대탑’이다. 이렇게 크고(155cm) 섬세한 청동 주물탑을 만든 고려 장인은 누구였을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문양 하나하나를 정성으로 새겨놓은 고려인의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늘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용두보당(국보 136호)’을 실물로 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도 국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됐다. 통일신라 경덕왕 13년(754) 8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황룡사의 연기법사가 발원하여 만든 <신역화엄경(新譯華嚴經)> 사경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경전이다. 신라 종이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 그 자체다. 14세기 고려불화의 전형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와 ‘지장도(보물 784호)’의 상설전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내 10여점 밖에 남아 있지 않는 고려불화는 보존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상설전시를 하지 않아 일반인들이 직접 실물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불교미술실은 철저한 온ㆍ습도 관리는 물론 유물의 보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특히 금동불상의 쇼케이스는 독일의 ‘글라스바우 한(Glasbau Hahn)’사가 제작한 것으로 세계최초로 천정에 고정된 독립장 형식을 채택했다. 뿐만 아니라 전시기법에서도 밑에서 위로 불상의 상호를 올려 보도록 만들어 자연스럽게 관객이 불상을 경배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배려한 점도 이 전시실만의 특징이다.
불교미술실의 손은석 선임 연구원은 “뮤지엄1의 1층에 불교미술실이 자리 잡은 것은 불교미술이 한국고미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남다른 것도 있지만 각 층을 관람한 뒤 마지막으로 불교미술품을 보면서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고 밝혔다.
조용수 기자
건물 자체가 세계적 작품 ‘리움’
이중섭 박수근 등 국내외 명작 한눈에
‘리움’은 삼성 창업자 일가의 성 ‘Lee’와 ‘Museum’의 합성어다. 리움(Leeum)에는 세계적 미술관들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미술관을 세운다는 삼성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뮤지엄1’ ‘뮤지엄2’ ‘삼성아동교육문호센터’ 3개 동으로 구성된 리움은 2400여평의 대지에 연건평 8500평 규모로 아담하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나 시설면에서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건물자체가 예술작품이라고 불릴 만큼 건축가 3명의 독특한 개성과 혁신적 기법이 돋보인다.
‘뮤지엄1’은 고미술관으로 스위스 출신의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한 직육면체와 원추형의 건물. 외관은 테라코타로 마감했다. 특히 고동모양의 원추 기둥은 미술관의 중심으로 각 건물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각층은 나선형의 계단을 통해 연결 되어져 있어 4층에서 1층까지 달팽이관을 돌 듯 자연스럽게 작품들을 관람하면서 내려올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뮤지엄2’는 근현대미술관으로 프랑스 출신의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했다. 밖에서 보면 건물자체가 설치작품이다. 부식시킨 스테인레스 강판을 상자모양으로 쌓아 전시공간 겸 외벽이 되게 만들었다. 뮤지엄2에는 이중섭 박수근 서호도 이불 자코메티 요셉보이스 앤디워홀 백남준 등 국내외 유명 미술가들의 대표작 70여점이 전시돼있다.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네들란드 출신의 '렘 쿨하스(Eem Koolhaas)'에 의해 전혀 다른 느낌의 세 건물을 하나로 융합시켜 놓았다. 내부공간은 알차보였지만 밖에서는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보이지 않는 건축’을 끊임없이 시도해온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한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이 놓인 테라스는 주변 주택가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출입을 통제해 아쉬움을 남겼다. .
‘리움’ 미술관 홍라희 관장
“리움 미술관을 통해 불자들이 불교미술 작품을 보다 폭넓게 감상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는 홍라희 관장은 오랫동안 불교와 인연을 맺어온 불자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여성불자모임인 ‘불이회(不二會)’의 회장으로 매년 젊은 불교인재를 발굴을 위해 ‘불이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홍 관장은 불이회를 통해 인재불사와 신행,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홍 관장은 현재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산하의 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 로댕미술관 관장을 겸하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을 이용하려면
올해 연말까지는 전화예약제로만 관람이 가능하다. 국내 처음으로 어린이를 위한 ‘미술작품과 떠나는 시간여행전’이 열리고 있다. 하루 허용인원은 100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관람은 매일 오전 11시~오후 4시 까지 가능하다. 휴관일은 매주 일ㆍ월요일이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 버스 110, 0014, 0015번을 이용하면 된다. (02)2014-6901 www.le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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