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프 A. 슈타인 / 안성두 옮김
무우수 펴냄 / 1만5천원
티베트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대지의 배꼽’이라 부른다. 지구가 아기라면, 티베트는 그 아기와 어머니인 우주를 연결하는 탯줄이 되는 셈이다. 태초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배꼽. 티베트인들은 그 어머니의 어머니를 만나는 천년의 여정을 불교와 함께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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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춥고 거칠어 살기 힘든 땅, 3백년 넘게 중국의 지배를 받는 속국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머리를 스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 티베트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다. 티베트는 1천년의 역사를 지녔고, 아시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국이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로 불교를 품었다.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리고 겸손했다. 그 ‘대지의 배꼽’에 서서 인도불교, 이슬람문화, 중국 문명을 수용했기에 그렇다.
티베트학의 세계적 귄위자 롤프 A. 슈타인은 <티벳의 문화>에서 티베트에 대한 오해들을 하나하나 풀어헤쳤다. 고대 신화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 종교, 관습, 문학, 예술 등 티베트 전반에 걸쳐 시공을 넘나들며, 오해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역사, 어떻게 높은 문화적 품격을 갖추게 됐는지, 심원한 종교적 이상의 나라였고, 지금도 그런 나라임을 구석구석에서 꼼꼼히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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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는 “티베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이 나라가 일반적인 인류의 역사를 위해 기여한 특별한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책을 쓴 의도를 소개한다. 토지와 주민, 역사, 사회, 종교와 관습 등 4개의 장으로 나눠 티베트에 대한 오해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짚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자의 펜 끝은 철저히 티베트 고유의 문화 찾기에 맞춰졌다. 인도불교의 부산물 내지 아류로서의 티베트 문화읽기 문제점을 지적한다. 티베트 문화의 특징은 ‘응축 내지 집중’에 있다고 강조한다. 15세기 전통종교 뵌 교와 오랜 갈등을 풀고, ‘법왕(法王)제도’를 확립한 것, ‘라마교’라는 티베트만의 불교를 발전시킨 것 등을 통해 티베트 문화의 특징을 설명한다.
오해 풀기 작업은 티베트인이 오로지 목축에만 종사하고 있는 유목민으로만 보는 관념에서 시작한다. 티베트의 경제는 동아시아의 초기문명에 의해 발전된 곡물 농업과 축산으로부터 파생돼 나왔다는 것을 저자는 주목한다. 약간의 변형은 단지 고산지 환경의 관점이 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티베트 고유문화 찾기 여정은 기존의 잘못된 티베트 인식 바꾸기로 이어진다. ‘티베트는 인육을 먹는 자들의 땅, 몽매하고 야만적인 곳’이라 묘사된 한역 경전의 비판이 이를 대변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최초의 티베트인은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농경에 적합한 산림으로 덮인 산악지대에 정착했다고 설명한다. 처음 경작지는 티베트 남동부 지역 야룽계곡의 소탕에 있었고, 가장 비옥한 지방인 야룽은 왕가의 발상지였다는 점. 그리고 산림의 원숭이와 바위의 여자정령이 티베트 최초의 조상이었다는 그들의 전설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저자의 티베트 문화 읽기는 티베트가 엄연한 독립 국가였다는 점을 중국과의 역사적 사실 관계 속에서 추적한다. 10세기 말 일종의 교단국가로 발전됐던 티베트 사회의 특징과 함께 18세기에 실질적으로 중국의 속국으로 될 때까지 역사를 파헤친다. 또 근대에 들어 티베트인들이 중국과 영국의 조약으로 두 동강난 조국을 경험했고, 급기야 중국에 강제 편입된 아픔까지도 저자의 문화읽기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키워드가 불교로 확장된다. 불교관념이 티베트 역사를 훑는데 길라잡이가 된다는 것에 저자는 중점을 둔다. 불교가 도입되면서 티베트는 문명화의 옷을 입게 된다. 정방형 중심의 도시를 건설하고, 문자도 만들었다. 불교는 티베트의 뼈와 살이 돼온 것을 강조한다. 이후 불교는 영토가 남으로는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까지, 서북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동북으로는 장안 근처까지 뻗어서 당시 세계 최대 제국 당나라를 위협할 정도의 국가로서 당당하게 군림하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저자는 이어 티베트인의 문화적 자신감을 부각시킨다. 서기 792~794년 삼예사에서 벌인 중국과 교리적 논쟁에서 승리한 것을 티베트가 완전한 독립 국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논쟁에서 중국측 마하연은 ‘돈오’와 단선적인 사고로 선업을 적용하려는 무의미성을 주장했지만, 선업은 성불을 위한 수행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수’의 논리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때문에 이 책은 그간 국내에서 간간이 소개된 티베트 여행 기록과 그곳에서의 수행 체험을 담은 명상서 등과 처음부터 성격을 달리한다. 저자의 학문적 역량, 탄탄한 연구 등이 바탕이 돼 티베트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주기에 그렇다. 여기에 60여 장의 흑백사진이 파노라마처럼 티베트의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우리에게 티베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묻어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