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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2003-06-11]
89세 호명 스님, 마지막원력 ‘인재불사’
“수행을 하려면 선(禪)의 길잡이가 되는 이론적 체계와 철학이 확고히 서야 물러섬이 없는 선공부가 시작됩니다. 선로(禪路)에 오르는 방법론부터 직접적인 선수행 지도와 점검으로 바른 선승을 배출하는 도량이 될 것입니다.”
평소 선 수행에서 선이론 정립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세수 89세의 통도사 호명 노스님이 신라고찰 울산 운흥사(주지 야은)에 ‘경심회(經心會)’라는 선방을 열고 직접 선 지도에 나선다. 선원장이나 조실을 마다하고 지도법사를 맡은 이유도 노스님의 마지막 원력이자 60여년 수행의 열매를 후학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다.
동안거, 하안거 없이 3년 동안 지속적으로 공부에 임할 스님들을 모집중인 경심회 선방은 어디서든지 선수행을 할 수 있는 기본을 정립시키기 위해 ‘종교로써 불교신행의 방법론’ ‘불교 공(空)사상의 선철학’ ‘선수행 실수(實修)’ 등의 과목이 개설된다.
경심회 선방은 향후 2개월 동안 수시로 입방 신청을 받고, 호명 노스님이 직접 점검 후 선별한 스님 10명만 우선 입방을 허용하고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금강산 마하연, 상원사 등 제방선원에서의 정진과 천성산 조계암에서 22년간 선농일치의 수행을 했던 호명 노스님은 선방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법문비를 모으고, 한국 불교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될 선승배출을 목적으로 하는 경심회 회원을 모집해왔다.
호명 노스님의 원력과 열정에 탄복해 운흥사에 선방을 열게 된 선원장 야은 스님은 “호명 노스님의 원력은 젊은 우리들도 흉내조차 낼 수 없다”며 “다양한 수행법이 혼재하는 현실에서 올바른 선수행의 길잡이가 되는 어른 스님을 모시고 수행하고 탁마할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 양성을 부처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여기는 호명 노스님은 “우리 불교의 뿌리를 튼튼히 하려면 모든 이의 모범이 되는 스님의 자세가 올곧아야 하고 선의 향기가 풍겨나는 참된 수행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입방 문의 055) 382-3225 부산=천미희 기자
420호 [2003-05-07]
<심산스님의 스님이야기>호명 스님
원하는 곳 어디든 찾아가 설법
“인생살이도 간이 맞아야” 강조
10여 년전 팔순을 바라보는 작고 깡마른 노스님을 한 분 만났다. 통도사의 한주로 계시는 호명 노스님이시다. 구십을 바라보는 요즘에도 목소리는 힘이 있고 눈썹이 하얗게 세어서 산신령 같은 모습이다. 방에서는 언제나 책을 놓지 않고 항상 스님들의 수행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셔서, 제방 선원을 다니며 젊은 수좌들의 수행을 통해 당신의 이상을 확인하시는 철저한 분이시다. 그런 과정에서 때로는 스님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혀를 차기도 하고 불교의 미래를 너무도 절절이 걱정하시는 모습은 후학으로서 본 받을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노스님은 불자들의 바른 불교공부가 못내 걱정 되셔서 잠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을 가슴에 사무치는 간곡한 심정으로 하시곤 했다. 그래서 89세의 고령에도 법문을 청하는 곳에는 어디든 가신다. 그렇게라도 부처님 밥 먹는 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 빚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노구를 이끌고 당신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건 가신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화려하거나 빛이 나는 큰 법회도 아니고, 다만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열의만 있는 곳이면 아무 말 하지 않고 흔쾌히 가시는 것이다.
한번은 반야심경 강의를 부탁드렸는데, 설법시간에 ‘마하’라는 단어를 설명하시면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오로지 쉽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토해내는 노스님의 법문은 그대로 절규였다. “커야 한다. 작은 마음, 작은 생각, 작은 소견으로는 진리와 만날 수 없다.”는 말씀은 진리의 법등을 이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호소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정작 법문을 듣는 청중들은 얄팍한 머리로 쉽게 이해하고는 빨리 진도가 넘어갔으면 하는 눈치들이다. 그러나 어떤 눈치에도 괘념치 않고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싶으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끝까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오히려 미안할 정도로 집요 하시다.
진리가 말을 여의지 않았으나 말은 진리가 아니듯이, 당신이 깨닫고 이해한 내용과 막상 표현해 내는 형편 속에는 뭔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그것을 극복해 내기 위해서 생을 마지막 정리하는 마음으로 반야심경 해설서를 집필하고 있노라고 말씀하실 때는 존경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의 법문 중에는 음식의 간에 대한 비유가 유달리 많다. 짤 때 짜야 하고 싱거울 때 싱거워야 하는데, 간이 맞지 않으면 음식 맛이 없듯이 인생에도 간이 맞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인생에 간을 맞춘다는 것은 해야 할 때를 가려 할 일을 하는 것이고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양면에 대한 법문이다. 즉 세상은 모든 것이 양면이 있다는 뜻인데 시계추도 옆으로 간만큼 반대로 가야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먹은 것만큼 배설이 되어야 신진대사가 원활해지는데, 우리는 먹는 것에는 대단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배설에는 소홀하기 때문에 몸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부나 수행에도 적절한 양면성의 조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좋은 것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좋지 않은 것에 대한 감당도 생각해야 형평이 맞지 않는가. 그런 조화가 실천이 되면 사회의 밝은 곳은 물론 어두운 부분에까지 관심이 미치게 되는데, 그것이 불자의 온전한 수행이라는 것이다.
스님의 수행관은 종교적인 확고한 믿음과 철학적이고 체계적인 이론, 그리고 꾸준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심과 교리와 실천의 원만한 삼위일체를 통해서만이 수행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고,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해서는 끝내 멋진 수행의 결과를 성취할 수 없음을 가르치셨다. 이런 당신의 지론에 언제나 자신만만 하시다. 그리고 그런 말씀을 하실 때는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신다. 그리고 덧붙이는 후렴 한마디 “어이구…. 안타까워…. 열심히 해봐요.”
노스님에 대한 강한 인상 중에 또 하나는 포교가 많이 되어서 온 가족이 함께 절에 나와야 불교가 발전 한다는 소신을 들 수 있다. 그런 간절함 만큼이나 발로 뛰는 분이 노스님이시다. 그 열정은 오히려 젊은 우리가 뒤따라갈 정도이다. 언제나 찾아 뵐 때면 포교 많이 하라고 격려하시고, 올바른 불자 많이 만들어서 이 세상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충만되게 하라는 염원을 잊지 않으신다. 스님의 옥체가 늘 강건하시기를 기원 드리며, 열정으로 살아오신 스님의 뜻이 많은 후학들에게 이어지기를 발원한다.
■(사)한나래 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