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중 수행 5일째였다. 지금까지 좌선에 방해가 되었던 소리들이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소리는 분명히 들렸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독참(獨參, 조실 스님과 수행자 사이에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참선 점검)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질러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모(某)씨의 소리는 오히려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 노력에 동정을 보내고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일체를 받아들이고 일체를 사랑하지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 열린 것이었다. 독참 때 이러한 심경의 변화를 로오시(老師, 조실 스님을 일본에서는 ‘로오시’라 부른다)께 말씀드렸다. “지금부터가 수행의 본격적인 시작이야”라는 말씀이 가슴 구석구석까지 스며들면서 무한히 감사함을 느꼈다.
집중 수행을 마치고 야간열차를 타고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녁에 집에 도착했다. 다행히 열차 안에 빈 자리가 많아 계속 좌선할 수 있었다. 집중 수행 때 일어난 심경의 변화가 줄곧 이어졌다. 돌아와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회의가 있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십수일간 아침저녁으로 계속 좌선하고 있다. 이렇게 1년 정도 지속하면 어떤 일도 지금의 심경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대부분의 전문 선수행 도량에는 위와 같은 재가신자가 제법 있다. 내가 매년 수차례 방문하여 수행하고 있는 야마나시켄(山梨縣) 엔잔시(鹽山市)의 고오가쿠지(向嶽寺) 선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오가쿠지는 일본 임제종(우리나라의 조계종과 같이 간화선 수행을 종지로 하는 종파) 16대 본산 가운데 하나로 후지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개창한 후 600여 년의 세월동안 청정 수행도량의 명성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선종 명찰이다.
| |||
일본 임제종에는 셋신(攝心 또는 接心)이라고 하는 집중수행기간이 있다. 셋신이란 마음을 화두에 집중하여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는 의미로서, 5일 내지 7일 동안 주야로 부단히 좌선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하안거(5~7월)와 동안거(11~1월) 기간 중에는 매달 셋신이 있고, 4월과 10월에는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
이 셋신 중에 가장 혹독하고 엄한 셋신은 “로오하츠 오오젯신(臘八大攝心)”이다. 옛부터 ‘운수납자의 목숨 재촉’이라 불릴 정도였던 이 집중 수행은 12월 1일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한 12월 8일 새벽까지 진행된다. 일본에서는 모든 불교 행사를 양력으로 치르기 때문에 성도일도 양력 12월 8일이다.
이 기간 중, 수면 시간은 하루 약 1시간에 불과하다. 새벽 3시에 기상하여 다음 날 새벽 2시에 취침한다. 아침 예불 1시간, 저녁 예불 30분, 식사와 청소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좌선한다. 그리고 이틀에 한 번 <벽암록>에 대한 로오시의 강의가 1시간 내지 1시간 30분에 걸쳐서 있다.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일본 임제종의 선방에는 불기운 한 점 없다. 난방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두들 맨발에 얇은 옷 몇 벌만 입는다. 여름 옷차림이나 겨울 옷차림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여름에는 옷이 너무 두꺼워 땀투성이가 되지만, 겨울에는 너무 얇아 찬 기운이 종횡무진으로 속살을 왕래한다. 여기에다 한겨울에도 선방의 출입문과 그 많은 창문들을 모두 다 활짝 열어놓고 좌선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까지 부는 날이면 그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물걸레로 닦은 법당 마룻바닥에는 살얼음이 맺혀 있고, 실내 화장실 입구 수도꼭지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다. 선방에 물컵이 있다면 틀림없이 밤새 꽁꽁 얼 것이다. 작년 로오하츠 오오젯신 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발에 동상이 걸려 애를 먹었다.
올 여름 7월말의 셋신 때는 일본도 10년만의 무더위로 고오가쿠지 인근은 기온이 연일 최고 40℃까지 올랐다. 선방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도 없었다.
스님들은 네 겹의 승복을 입고 재가자들도 모두 긴 상하의를 입고 수행했다. 땀은 샤워하듯 전신을 흘러내렸지만 스님과 재가자 모두 낙오자 하나 없이 모든 수행을 거뜬히 다 마쳤다.
● 선문답 없는 깨달음 없다
고오가쿠지를 포함하여 많은 전문 수행도량에는 이 혹독한 집중 수행을 스님들과 똑같이 수행하는 재가신자들이 많다. 그들은 수행 기간 동안 절에 머무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집을 오가며 수행하기도 한다. 작년 로오하츠 오오젯신부터 올 여름 7월 셋신까지 고오가쿠지에 상주하며 수행하고 있는 스님은 8명. 반면 같은 기간 셋신 수행에 참가한 재가자는 7명이며, 그 중 매 셋신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한 재가자는 3명이다. 곤 교수와 다도 선생인 하야지마 여사,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히하라 씨가 바로 그들이다.
국립 야마나시 대학의 칸트 철학 전공인 곤 요시히로(今 義博)교수는 고오가쿠지의 대표적 재가수행자인데, 명문 쿄토(京都)대학 철학과 출신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50대 초반인 그는 3년째 고오가쿠지의 집중 수행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고오가쿠지 선방에 나오기 전부터 그는 다른 도량에서 선수행을 계속 해왔다고 한다.
스님들 수와 맞먹는 재가자들이 견디기 힘든 추위와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오랜 기간 선수행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들 선수행을 통해 앞의 중학교 교사와 같은 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본인들의 피나는 정진이겠지만, 이러한 정진을 지속시키고 체험을 왜곡 없이 심화시켜 나가게 하는 것은 로오시와 각 수행자 사이에 매일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참선 점검, 즉 독참(獨參)이다.
독참 시간에 수행자는 로오시와의 일대일 선문답을 통해 화두에 대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점검받는다. 로오시는 선문답에서 각 수행자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할 뿐 아니라 수행자를 분발시켜 수행에 더욱 매진케 한다. 바로 이 선문답을 통해 수행자는 깨닫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아 정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참고로 독참은 선의 본고장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머리 굴리는 습관에 오랫동안 젖어 있기 때문에 몸으로 풀어야 할 화두를 머리로 먼저 풀어내게 마련이다. 일단 머리로 어떤 해답을 찾았으면 그 답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그 답에 묶여서 더 이상 화두 참구에 진척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때 로오시와 하는 독참 시간의 일대일 선문답을 통해 머리로 푼 답의 허점을 알게 되어서 이를 뚫고 나가게 된다.
| ||||
셋신 기간 동안에 독참은 하루 4~5회 있다. 3~4시간마다 독참이 있는 셈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독참에 다 응해야 한다. 집중 수행에 참가한 인원만큼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수행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독참의 횟수도 그만큼 많다. 로오시만이 독참을 지도할 수 있으므로 집중 수행에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은 일정 숫자 이내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평상시에도 독참은 하루 한 차례씩 있다.
1인당 독참의 횟수와 소요 시간은 승속에 제한이 없고 모두에게 평등하다. 집중 수행 기간 동안 승속이 같은 선방에서 좌선을 함께 할 뿐 아니라, 식사와 예불, 청소 등 모든 것을 승속이 같은 공간에서 같이한다.
이와 같은 재가불자에 대한 배려는 일본 선종의 역사에서 그 뿌리가 깊다. 고오가쿠지를 개창한 밧스이 토구쇼오(拔隊得勝, 1327~1387) 선사도 그러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경우는 하쿠인 에가쿠(白隱慧鶴, 1685~1787) 선사였다. 일본 임제선을 확립한 분으로 평가받는 하쿠인 선사는 일반민중 교화를 위해 유머가 담긴 속어로 책을 저술했으며 그 속에 삽화까지 친히 그려 넣기도 했다.
일본에서 선은 선방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면서 일상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왔다. 일본의 근대화를 정신적으로 이끈 인물 거의 모두가 선수행을 많이 한 사람들이었다. 일본 근대 철학의 구축자 니시다 키타로오(西田幾多郞, 1870~1945), 선학의 거장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 일본의 대표적 문학 작가 나츠메 소오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 예술·건축·생활 곳곳에 스며 있는 禪
우리 식탁에도 자주 오르는 단무지는, 겨울철 선 수행자들을 위한 저장 식품으로 일본의 타쿠앙(澤庵, 1573~1645) 선사가 처음 만들어 낸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 식품을 선사의 법명 그대로 ‘타쿠앙’이라 부른다. 이외에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낫토우(삶은 콩을 띄운 것), 두부 요리, 매실 장아찌(우메보시) 등도 모두 선종 사찰에서 보급한 것이다.
일본의 다도, 꽃꽂이, 수묵화, 가면음악극(能, 노오) 등의 예술과 정원 및 건축 등에도 선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도의 대성자 센노리큐우(千利休·1522~1591)는 고케이(古溪) 선사의 제자로서 선수행에 매진했으며, 가면 음악극의 확립자 제아미(世阿彌) 역시 깊이 선을 공부했고 상당한 경지에까지 이르렀음이 그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선의 영향을 받은 생활과 문화는, 단순성 속에 깊은 의미를 감추고 있다. 차 한 잔 마시고 꽃 한 송이 꽂는 단순한 행위에서도 대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너와 나라는 분별이 사라지는 심연을 창출하는 것이 선이다. 일본이 오늘과 같은 현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선의 정신과 문화가 일본인들의 의식 세계와 일상 생활 곳곳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글ㆍ사진=장휘옥(오곡도명상수련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