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규모인 63개국 264편의 작품이 상영되는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7일 개막했다. 15일까지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들은 한국에서 58편, 아시아에서 101편, 기타 지역에서 105편이 출품됐다. 아시아 최고의 쇼케이스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이번에 상영되는 영화 중에서는 사회적 갈등을 다루거나 정치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는 작품들의 비중이 높다. 태국 감독인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다섯번째 영화 '베이퉁', 이란 감독인 아지졸라 하미드네자드의 '눈위에 흐른 눈물'과 바흐만 고바디의 '거북이도 난다' 등이 그런 영화다.
태국 영화산업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은 '베이통'을 통해 불교 국가로만 알고 있는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 분리주의 운동의 실상을 이야기한다. 태국에는 전체 인구의 4%가 무슬림이며 주로 남부지방에 살고 있다. 이들 중 일부 무장세력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과격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베이통'은 무슬림의 테러에 희생된 누이의 딸을 돌보기 위해 환속한 스님과 조카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지워 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논지 니미부트르는 태국인들 대다수가 잘 모를뿐더러 심각한 편견을 갖고 있는 무슬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종교를 초월한 인간의 신뢰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인 논지 니미부트르는 1962년 논타부리에서 출생했으며 시파콘 대학교에서 예술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1984년 광고와 뮤직비디오 감독을 시작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댕 버럴리와 일당들' (1997)은 박스 오피스의 기록을 갱신하는 등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며 태국 영화산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태국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영감을 준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후 그가 연출한 대다수의 작품은 국내 및 세계의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표작으로는 '낭낙'(1999), '잔다라'(2001) 등이 있다. 불교적 상생의 코드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10월 13일에 상영된다.
이란에서 온 두 편의 영화 아지졸라 하미드네자드의 '눈위에 흐른 눈물'과 바흐만 고바디의 '거북이도 난다' 역시 민족분쟁을 하는 쿠르드 족을 다루고 있다. '눈위에 흐른 눈물'은 쿠르드 게릴라를 돕는 처녀와 지뢰를 탐지하는 이란 병사와의 관계를, '거북이도 난다'는 이라크 군의 만행을 피해 북쪽 국경지방으로 도망 온 쿠르드족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편 다 플롯 구성 자체도 탄탄할 뿐 더러 상징기법이 뛰어난 작품들이다. 바흐만 고바디는 데뷔작 '취한 말들의 시간'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민족분쟁을 돌아보는 이같은 영화들은 타인과 공존하는 '상생'이라는 화두를 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