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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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전시관 건립하는 지선 스님
‘달마와 나한상’을 테마로 하는 ‘불교수석 전시관’이 건립된다. 고불총림 백양사(주지 명공)는 다음달 성보박물관 옆에 ‘백양사 학봉 수석관(가칭)’을 착공하고 내년 개관할 예정이다. 사찰에서는 처음으로 설립되는 ‘학봉 수석관’은 100여 평 규모의 전시실에 ‘오백 나한상’이 상설 전시된다.

‘학봉’은 전 백양사 주지 지선 스님(知詵)의 호이다. 이곳에 전시될 수석도 지선 스님이 30여 년간 수집한 작품들이다.

“인류가 처음 접한 것이 돌입니다. 돌은 신앙의 대상이자 생활도구였고, 죽어서는 사후의 안식처였습니다. 특히 석탑, 석등, 마애불 등 돌문화의 꽃을 피운 불교는 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백양사 선석당(禪石堂)에서 만난 지선 스님은 “예부터 스님들은 수석(壽石)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선석(禪石)이라 하여 돌에서 법을 구했다”며 ‘불교의 수석관’을 역설한다.

애석(愛石)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승전 법사(勝詮法師)이다. <삼국유사>에는 “당나라에서 <화엄경>을 공부한 신라 승전 법사가 만경사에서 80여 개의 돌을 모아놓고 경전을 강독하며 아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승전 법사의 경전강독을 듣던 돌에서 꽃이 피었고 지금도 금오산에서는 ‘매화석’이 나온다고 한다.

지선 스님과 돌과의 특별한 인연은 출가 전부터다. 스님의 할머니는 늘 ‘허리 아프다’며 손자에게 냇가에서 돌을 주워오도록 했다. 할머니는 둥글둥글한 돌을 가마솥에 삶아 그 물을 마시고, 목욕하곤 하셨다. 어린 손자는 돌을 줍다가 특이한 것은 마당 화단에 세우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어린 소년은 어느덧 자라 출가를 하고 영광 불갑사 주지가 됐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우연히 돌을 보게 됐다. 천지에 깔린 것이 돌이지만 그날은 ‘돌을 바라만 보아도 편안했던’ 어렸을 적 일이 생각났다. 그 후 정진이 막히거나 사중에 문제가 생기면 강과 바다로 나섰다.

“수석은 자연이 만든 예술입니다. 풍마우세(風磨雨洗)를 겪은 수석은 유달리 달마, 관음상 등 불교와 관련된 것이 많아요. 탐석에 앞서 강가의 바위에 앉아 참선에 들면 수많은 돌들이 모두 선승이 됩니다. 염불을 하면 돌들도 따라서 염불을 하지요. 그러다 달마석을 만나고 부처석을 친견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법을 청해듣습니다.”

수석의 절정은 ‘돌과의 대화’이다. 처음엔 돌의 모양이나 색깔을 보지만 시간이 흐르면 돌의 좋고 나쁨이 사라진다. 이때쯤이면 돌이 말을 걸어온다. 꽃무늬 석에서 향내가 나고, 산수석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꼿꼿한 노승석(老僧石)과 선문답을 하다보면 ‘삼매경’에 빠지게 된다. 다름아닌 ‘선석일여(禪石一如)’이다.

하루는 바닷가에서 탐석하다가 바닷물이 들어와 고립되었다. 오도가도 못하고 밀려오는 바닷물만 바라보고 있는데 다행히 마을주민들이 배를 타고 와서 살아났다. 제주 관음사에 살 때는 한라산 나한석과 마주앉아 참선에 들었다가 불공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수석은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작은 돌에 삼라만상의 여러 형상이 집약되어 상징적으로 축소된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같은 돌이라도 보석, 화석, 진기석, 석공예와는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수석은 자연의 수려한 경치가 돌에 축소된 산수경석(山水景石), 사람이나 동물, 집 등 물체를 닮은 형상석(形象石), 돌표면에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무늬석 등으로 구분된다.

지선 스님의 수석은 부처, 달마, 나한상 등의 형태를 갖춘 형상석과 이런 무늬가 새겨진 무늬석이 주류를 이룬다. 천여 점이 넘는 수석이 ‘선석당’ 뒤편 창고에 빼곡히 쌓여있다. 앞마당에도 탐석 때 함께 가져온 잡석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서너평 남짓한 스님 방에도 달마, 나한석으로 비좁다. 영락없는 ‘달마’가 있는가 하면 ‘불자를 괴고서 졸고 있는 노승’이 있어 그 앞에 서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석에 문외한이 보아도 달마나 나한상은 뚜렷해 절로 경배심이 생긴다.

지선 스님은 ‘수석과 수행’을 둘로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석에 대한 집착은 강력하게 경계한다.

“수행자가 무소유로 살아야 하는데 좋은 것은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걸리고 집착이 생기더군요. 재야활동하면서는 더더욱 시간을 내기 어려워 본의 아니게 몇 년 쉬었습니다. 수석을 놓고 보니 ‘돌(石)-도(道)-돈(金)-독(毒)’의 이치가 보이더군요. 잘하면 도를 알지만 잘못하면 돌이 돈이 되고, 독이 됩니다.”

그동안 스님이 ‘돌(石) 선지식’을 찾아 전국의 산과 강, 바다를 걷지 않은 곳이 없다. 요즘도 강연과 법문을 하고 받은 거마비나 용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수석만행(壽石漫行)’에 나선다.

이렇게 만난 선지식이 하나 둘 백양사 ‘선석당’에 모였다. 그렇다고 수석전에 출품하거나 내세우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세속에서 스님의 작품전시 요청이 줄을 이었고, 이번에 지자체에서 전시관건립을 지원하고 나섰다.

지선 스님도 “수행의 연장이기에 숨기거나 드러낼 필요는 없으나, 사찰도 새로운 문화창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수석전시관 건립을 허락했다.

“수석 앞에 서면, 스님에게 듣는 법문 못지않게 심오한, 달마석이 들려주는 법문이 생생하게 다가갈 것입니다. 일반인들도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수석을 보며 잊어버린 고향의 품을 느끼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착공을 앞두고 있는 백양사 수석전시관은 ‘새로운 21세기 불교문화의 모델’로 기대가 높다.
이준엽 | maha@buddhapia.com
2004-10-11 오전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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